후쿠시마 어민도 오염수 방류 반대…“아시아인 함께 목소리 내고 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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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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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오염수 방류 중단 첫 소송 주도한 가와이 히로유키 변호사
“도쿄전력은 어민과 한 약속을 지켜라”
2023년 9월8일 일본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의 오염수 해양 방류를 중단시켜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가와이 히로유키(79) 변호사는 오염수 방류 중단 소송과 별개로 도쿄전력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 소송을 진행 중이다. 1심에서 13조엔의 배상 판결을 받아냈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변론 기일인 지난 7월27일 도쿄 고등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모습. 가와이 히로유키 제공


2023년 9월8일 일본에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의 오염수 해양 방류를 중단시켜달라는 소송이 제기됐다. 원고는 후쿠시마현, 미야기현의 주민 등 150명이다. 이들은 정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한 소장을 이날 후쿠시마 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원고는 오염수 방류로 평온하게 생활할 권리를 침해받았고, 어민들은 생계 회복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주장했다. 또 도쿄전력의 방류 계획과 설비를 조사해 합격 판정을 내린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처분 취소와, 도쿄전력의 오염수 방류 중단을 청구했다.

어민 중심 소송인단 꾸린 까닭은


도쿄전력이 8월24일 오염수 해양 방류를 시작한 이래 일본에서 이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지역 주민들도 추가 소송을 제기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겨레21>은 이 소송을 주도한 가와이 히로유키(79) 변호사와 9월1일 화상 인터뷰를 했다. 가와이 변호사는 일본의 대표적 탈핵 변호사로, 후쿠시마 사고 뒤 ‘모든 핵발전소를 재판으로 멈추자’는 운동을 벌였다. 다큐멘터리 <핵발전과 일본>(2014)을 만들고, 다카하마 핵발전소 재가동 금지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소 제기 배경과 취지를 설명해달라.


“후쿠시마 현민과 어민들을 포함해 일본인 대부분은 오염수 방류에 반대한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수년간 해온 캠페인 때문에 ‘오염수 안전 신화’가 많이 퍼져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해양 방류를 꼭 막아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의뢰했다. 어민은 어업조합의 내부 통제가 심해 반대하고 싶어도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몇몇 어민과 수산업 판매 종사자가 용기 있게 의뢰해 시작하게 됐다.

원고를 광범위하게 모으진 않은 것 같다.

“어민과 수산업 종사자 등 직접 피해자를 중심으로 해야 승소할 확률이 높아진다. 증거가 충분하지 않으면 쉽게 진다. 그래서 3명의 이해당사자(어민과 수산업 종사자)로 시작했다. 나머지는 후쿠시마 현민과 (인접한) 미야기의 현민이다. 이해당사자와 시민이 함께하는 소송이다.”

2015년 도쿄전력이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에 한 약속을 문제 삼았다.

“2015년 두 차례 오염수가 그대로 바다로 흘러간 일이 있었다. 그해 8월 히로세 나오미 도쿄전력 사장이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에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취지의 답변서를 보냈다. 연합회가 ‘어민과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않은 채 해양 방류를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요청한 것에 대한 답이었다. 답변에서 도쿄전력은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어떤 처분도 하지 않고 다핵종제거설비(ALPS)에서 처리한 물은 발전소 부지 내 탱크에 보관하겠다’고 밝혔다. 이건 법률적으로 보면 제3자에 대해 효력을 갖는 계약(일본 민법 제537조)으로 볼 수 있다. ㄱ(도쿄전력)과 ㄴ(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 사이에 성립한 계약이 제3자인 ㄷ에 대해서도 성립하며, ㄷ을 위해서도 약속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ㄷ은 지역 주민이기도, 수산업계 사람이기도 하다. 계약 당사자는 아니지만 ㄷ도 권리를 갖는다는 법이 일본 민법에 있다. 한국 법에도 있을 것이다.”

2023년 9월1일 <한겨레21>과 화상 인터뷰 중인 가와이 히로유키 변호사


폐로 계획 가능한 일인 것처럼 하려고


해양 방류 외에 오염수를 처리할 방법이 많다. 일본 정부는 왜 이러는 걸까.

“우리도 정말 궁금하지만 합리적 이유를 떠올릴 수 없다. 오염수를 방류하면 안 되는 이유를 수없이 나열할 수 있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낼 수 없고 추측도 못하겠다. 정부 말은 (오염수 탱크를 보관할) 토지가 더는 없고 녹아내린 핵연료 격납용기를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데 땅이 없는 게 아니다. 부지 내 빈 곳이 있고, 인근에 중간저장시설 용도의 방대한 토지가 있다. 거기에 얼마든지 장기 보관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새 탱크를 증설할 수 없다고만 한다. 정부 말처럼 녹아내린 핵연료를 밖으로 꺼내는 건(폐로) 불가능하다. 몇십 년에 걸쳐 해도 가능하지 않다. 이게 불가능하다고 정부가 인정하면 후쿠시마 상황의 심각함을 외부에 알리는 것이 된다. 그래서 계속 폐로 계획을 가능한 일인 것처럼 얘기하고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2024년 가동 예정인 롯카쇼무라의 핵연료 재처리 시설 때문에 일본 정부가 무리해서 해양 방류를 하는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이 시설에서 배출할 삼중수소의 양이 후쿠시마에서 30년간 배출할 양의 15배라고 하더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비약이라 생각한다. 그 정도로 일본 정부가 머리가 좋진 않다. 해양 방류의 속내는 핵발전소 사고의 증거를 없애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큰 것 같다. 40년 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맨땅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사고를 극복했다’ ‘깨끗한 땅으로 만들었다’ ‘폐로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위한 스토리를 몇 년 전부터 만들고 홍보했다. 그러려면 오염수 탱크가 남아 있으면 안 된다. 롯카쇼무라는 20년 동안 계속 가동이 연기됐다. 2024년에 가동한다는 것도 확실한 얘기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역시 폐로를 순조롭게 진행한다는 청사진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경제적 측면에서 제일 싼 방법이라 방류를 선택했다지만, 이 논리는 이미 무너졌다. 처음 계획 때 37억엔(약 336억원)이었는데 이미 수백억엔을 썼다. 다 마무리되려면 1천억엔(약 1조원) 이상 써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 중국이 일본 수산물 전면 금수조치를 하면서 상상할 수 없었던 피해가 나오고 있다. 해양 방류 비용은 앞으로도 올라갈 것이다.”

‘핵마피아’, 일본에도 있다


일본은 유독 핵과 악연이 많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후쿠시마 사고에 오염수까지. 그런데도 국민의 핵에 대한 거부감이 낮은 것 같다.

“일본식 표현으로 ‘원자력촌’ ‘원자력마을’이라 하는데 한국식으로 ‘핵마피아’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이권 조직, 이권을 같이 챙기는 공동체다. 전력회사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언론 이런 것이 다 하나로 모여 어마어마한 힘을 갖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일본 사회의 60~70%가 이 이익구조를 공유한다. 핵발전은 돌릴수록 돈을 번다. 그렇게 번 돈을 여러 군데에 뿌리며 말을 듣게 하는 구조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경험했지만 핵발전은 안전하고 필요하다는 캠페인을 일본 정부가 1950~1960년대부터 계속했다. 그렇게 일본 사회는 핵발전 문화에 많이 지배됐다. 국민은 ‘핵무기는 나쁘지만 인류의 행복을 위해 핵발전을 사용해야 한다’ ‘나라를 구하는 에너지’라고 믿는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을 그만두자는 여론이 강해지긴 했지만 핵마피아가 다시 살아나 후쿠시마도 이제 안전해졌다는 논리를 만들었다. 다른 핵발전소 역시 재가동해도 괜찮을 만큼 세계 최강의 안전규제로 만들었다고 홍보한다.”

오랜 시간 핵과 싸우고 있다. 이런 소송을 하면 일본 내 우익의 공격을 받지 않나.

“많은 전화를 받는다. 중국이나 한국의 핵발전소, 프랑스의 핵연료 재처리 시설에서도 오염수가 나오는데 왜 일본만 공격하고 그걸 변호하느냐고. 내 생각은 이렇다. 다른 사람이 나쁜 일을 한다고 우리도 똑같이 나쁜 일을 하면 되겠냐. 그러니 모든 핵발전소를 멈춰나가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중국이나 한국이 ‘스스로는 정의롭고 일본은 나쁘다’고 공격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우리는 모두 핵을 용인한다는 면에서 다 나쁘다. 나쁜 일은 함께 끊자고 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북한이 핵무기나 미사일로 핵발전소를 공격하면 어찌 될지 걱정을 많이 안 하는 것 같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때 자포리자 핵발전소에 대해 그런 우려가 컸는데 한국인은 잘 신경을 안 쓴다.”

일본의 대표적 탈핵 변호사인 가와이 히로유키. 가와이 히로유키 제공


많은 국가가 함께하면 유효한 재판 기대돼


“오염수 방류는 세계 바다의 문제이고 아시아 바다를 오염시키는 문제다. 국가 간 일이 아닌, 아시아인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반대투쟁을 해나가야 한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아시아 사람들과 함께 반대소송을 내고 그런 운동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최근 말레이시아 경제인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그런 대화를 나눴다. 인도네시아, 타이, 중국, 한국 등 많은 아시아 국가가 함께 소송을 제기하면 유효한 재판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국도 핵발전소가 줄어들고 안전한 나라가 되면 좋겠다. 우리도 그렇게 하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

, 통역 오하라 츠나키 <탈핵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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