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 일해보니… “잔반이 되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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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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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2024년 6월 서울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가 일하는 모습. 한겨레 채반석 기자


<한겨레21> 제1523호의 체험관찰형 탐사보도 ‘급식이 무너진다’에 달린 수백 개의 댓글을 하나씩 읽어봤다. 반응은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 하나는 학교급식실 조리실무사들의 저임금 고강도 노동 실태에 대한 분노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가혹할 줄은 몰랐다는 글이 많았다. 특히 조리실무사들이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 밥값까지 내야 하는 박한 처우, 일터에 정수기가 없어 차가운 물 한잔 마실 수 없는 현실 같지 않은 현실에 대한 분노가 컸다.

다른 하나는 민원을 제기해 급식실의 노동량을 가중하는 학부모들에 대한 비판이다. “그렇게 급식에 불만이면 도시락 싸서 다니면 된다”거나 “학부모에게 대체근로를 시키자”는 냉소적 반응이 많았지만, 소비자주의가 교육 현장까지 뒤덮은 세태를 짚는 한탄도 이어졌다. “공교육 현장도 ‘나는 내 돈(내가 내는 세금 포함) 내고 (너의 서비스, 노동력을) 사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고객’(=왕)의 관점에서 사유하는 사고방식은 이미 놀랍지도 낯설지도 않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미 인간은 없다”(허지영)는 한탄이 그랬다. “우리가 어쩌다 이런 배려 없는 사회가 되었을까? 다 읽고 나니 눈물이 난다”(안민)는 탄식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은 조리실무사 당사자 발언이다. “저도 급식실 7년 일하고 온몸이 망가졌다”(경희)거나 “일주일 만에 손은 보라색 되고 몸은 다 망가졌다”(kook****)는 고백, “제 평생 그 어떤 일보다 힘들고 처절한 노동의 현장이었다”(gasi****)는 회고가 나왔다. 그러다 스크롤을 오랫동안 멈추게 하는 문장과 마주하고 마음이 무겁게 짓눌렸다. “현 종사자로서, 곧 떠납니다. 보람도 없고, 노력에 비해 보상도 없는 일. 최저임금이지만 용기 내 시작했던 일인데 노동 강도보다 제 자신이 잔반이 되는 기분이 드는 일입니다.”(romj****) 

학교는 모든 공간이 교육 현장이다. 교과서를 들고 공부하는 교실에서만이 아니라 운동장과 도서관, 급식실에서도 교육이 이뤄진다. 운동장에선 친구들과 뛰놀며 자신의 몸을 활용하는 방법과 놀이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 육체적 힘겨움을 극복해내는 참을성 등을 배운다. 도서관에선 책에 담긴 다른 사람들의 사유 세계와 함께 세상을 읽는 다양한 통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급식실에선 세상 곳곳에서 온 식재료가 조리하는 사람들의 기술과 노력에 의해 어떤 먹거리로 변모하는지와 함께 그렇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을 왜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운다.

하지만 요즘의 학교급식실에서는 이런 배움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학교가 교육의 주체로 조리실무사를 채용해 급식실을 배움터로 운영하기보다 외주 인력을 채용해 마치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공장처럼 효율성에만 급급한 급식실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급식실은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강한 통제를 바탕으로 움직이고, 노동자는 노동에서 소외된다. 이런 급식실에서 음식을 만들고 배식하고 치우고 씻는 일은 학생들과는 단절된, ‘보람도 없고 보상도 없는’ 고된 노동에 불과하다. ‘제 자신이 잔반이 되는 기분이 드는 일’이라는 말에는 이런 현실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

이번호에 실리는 ‘급식이 무너진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이런 ‘공장급식’ 노동 현장을 아프게 전한다.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급식실 대체인력 체험기



① 1500명 먹이는 학교에 정수기 없는 급식실… 그들이 찬물 먹는 방법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828.html

② 급식실 고강도 노동 8시간, 어느덧 손이 덜덜 떨려왔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8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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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편집장 이재훈입니다. 목소리를 낼 힘과 길이 없는 이들을 위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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