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제주도는 비자림로(대천교차로에서 금백조로 입구까지 2.94㎞) 확장 공사를 재개했다. 마지막 브레이크였던 ‘공사 무효 소송’에서 법원이 공사 강행 쪽 손을 들어주자 거침없어졌다. 2024년 3월에는 추가 벌목도 시작했다. 지금까지 애초 계획보다 1천여 그루 더 많은 3400그루의 삼나무를 베어냈다. 2019년 7월부터 2년10개월가량 제주도·환경부·시민들이 테이블에 앉아 협의한 도로 폭 최소화, 조류 번식기 회피 등등 ‘환경훼손 최소화’ 방안들은 휴지 조각이 됐다.
2024년 7월29일, 공사는 계속되고 있지만 시민들도 삼나무가 베어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시민들은 지난 3월과 5월, 그리고 6월에 세 번 공사를 모니터링해 그 결과를 기록하고 발표했다. 이들은 6년 전인 2018년 8월2일부터 사흘 동안 키 40m가 넘는 삼나무 1천 그루가 떼죽음당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으로 현장에 모였던 그 사람들이다. 그리고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는 시민모임’(비자림 시민모임)을 꾸렸다. 또 다른 대규모 환경 파괴가 예정된 제주 제2공항 공사 후보지(성산읍)에서도 오름·습지·숨골·조류 등등 분야별 생태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저기 보세요. 여기가 다 삼나무가 빽빽하게 있던 곳이에요. 형식적으로 묘목을 꽂아놓고 할 거 다 했다는 식이에요. 뿌리가 다 드러나 있잖아요.” 6년째 비자림 시민모임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황용운씨가 말했다.
황씨의 말처럼 제주도의 거짓말은 곳곳에서 확인됐다. 16.5m(시민 협의)로 짓겠다는 도로 폭은 30m가량으로 넓혀져 있었다. 찻길 가에 삼나무를 대신해 심었다는 키 1~2m 편백 묘목들이 시들시들 한 줄로 서 있었다. 일부는 고사했다. 숲이 있던 자리를 롤러와 굴착기, 덤프트럭이 맘껏 오갔다. 그렇게 해서 한때 울창하게 우거진 숲으로 한낮에도 어둑어둑했던 비자림로는 뙤약볕에 노출돼 있었다. 이미 기온은 34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로 확장을 위해 다리를 놓은 천미천에는 흙먼지가 날렸다. 제주에서 가장 긴 하천으로 비자림로를 관통하는 천미천은 여느 제주의 하천들처럼 평상시엔 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래도 물웅덩이가 마른 적은 없어 새들이 목을 적시고 먹이를 찾았다. 하지만 교각공사로 지반이 뚫렸고, 아예 메말라버렸다. “새들 번식철(5~9월)을 피해 공사하겠다는 약속대로라면 지금 공사하면 안 되죠. 천연기념물인 팔색조도 지금이 번식기거든요. 남방큰돌고래에 생태 법인격을 부여하겠다는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하는 일입니다. 전형적인 그린워싱이고 치적 쌓기죠.” 황씨가 말했다.
공사현장 한편에 작은 오두막이 놓여 있었다. 2019년 3월부터 농성과 감시를 위해 세운 시민들의 근거지다. 빈 오두막에는 ‘돈보다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편리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잃지 않기’ 등의 글귀가 쓰여 있었다. 그 옆으로 2018년 9월 ‘손바느질 퍼포먼스’로 만들어진, ‘자연이 행복하면 인간도 행복하다’라는 펼침막도 건재했다. 공사로 베어질 위기에 처했다가 결국 도로가 비켜가도록 했던 ‘150살 팽나무 노거수’가 공사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작은 2018년 8월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자림로 벌목 현장이 언론에 공개되고, 공사 현장에 날마다 안타까워하는 시민 수십~수백 명이 모여들었다. 비자림로 시민모임 등 여러 모임이 꾸려졌다. 각종 퍼포먼스, 크라우드펀딩 등등 다양한 행동이 이어졌다. 백미는 공사업체가 낸 환경영향평가서가 거짓·부실 서류라는 사실을 밝혀낸 일이다. 시민들은 전문가들과 함께 주변 숲을 모니터링했다. 천연기념물 팔색조·두견이, 멸종위기종인 애기뿔쇠똥구리 등 조류 46종, 양서파충류 12종을 확인(2019년 5~6월)했다. ‘하나도 없다’던 법정보호종이 10종 이상 비자림로 삼나무에 기대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힘으로 공사는 세 차례(2018년 8월, 2019년 5월, 2020년 6월) 멈춰섰다.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은 당시 이 조사 결과에 대해 “비자림로는 공사를 진행하느냐 중단하느냐 수준의 곳이 아니다. 기존 도로까지 없애 숲 전체를 자연보전지역으로 설정해야 한다. 생물다양성 차원에서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는 의견을 보탰다.
하지만 삼나무는 계속 베어져나가고 있다. “(제주도에서) 삼나무는 쓸모없는 나무라는 얘길 해요. 꽃가루가 날리고 키가 커 그늘이 지니 감귤나무가 못 자란다고도 해요. 그런데 삼나무로 그늘이 져서 공중습도가 높아지고 양치식물이 기세등등하게 자리를 잡았어요. 멸종위기종이라고 인정받는 새들도 살기 위해선 삼나무 숲이 있어야 하고 천미천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모든 생명이 연결돼 있다는) 대화가 없는 채로 어떤 개체가 중요하다 안 중요하다는 얘기를 해요. 삼나무가 차량 헤드라이트를 막아줘 애기뿔쇠똥구리들이 살고 있고, 키 큰 나무들이 있어 새들이 2차선 구간을 쉽게 넘어가죠. 피톤치드가 나온다며 ‘쓸모 있다’고 취급되는 사려니 숲은 비자림로 숲과 연결돼 있어요. 이렇게 생명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게 중요한데, 사람 기준으로 쉽게 쓸모를 얘기하죠.” 비자림로 생태조사에 참여한 디자이너 그린씨의 말이다.
삼나무에 기댄 주변 생태계가 풍성해졌다는 건 2019년 6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시민들이 전문가들을 초청해 자체적으로 진행한 ‘비자림로 식물상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멸종위기종 으름난초와 나도은조롱·백리향 등 희귀식물 17종부터 우리나라에 서식지가 극히 드문 양치식물 68종이 발견되는 등 비자림로 주변 숲에서 모두 585분류군의 식물이 확인됐다. 제주도 환경영향평가 결과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그런데 앞뒤 다 자른 채 삼나무를 타깃으로 한 공격이 거세졌다. “꽃가루 알레르기 피해가 크다”는 것이 주요 근거다. 급기야 2024년 4월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도의회에 나와 아토피 문제 해결을 위해 “오름의 삼나무 전량 베기”를 언급했다. 봄철 꽃가루 문제는 소나무·참나무류를 비롯한 풍매화의 공통적인 문제인데, 유독 삼나무만 문제 삼았다.
나무를 심는 시민모임 ‘혼디자왈’ 소속 송기남씨가 말했다. “삼나무는 백해무익하다는 식이죠. 삼나무 잔가지와 이파리를 잘라다 목욕하면 피부병을 낫게 해줍니다. 사시사철 그늘지게 해 항상 촉촉해서 산불을 막아주는 나무죠. 무작위로 베어내려고 삼나무를 공격하는 것 같아요.”
삼나무와 그 친척들(측백나무과)은 세계적으로 오래 살고 몸집이 큰 나무 무리다. 미국 세쿼이아국립공원의 자이언트세쿼이아들은 3천~5천 살로, 키가 100m 넘는 나무도 숱하다. 이런 장수 비결 중 하나로 산불 견딤 능력이 꼽힌다. 이날 삼나무의 바늘잎을 루페(확대경)로 들여다봤다. 통통한 다육질 잎이 눈에 들어왔다.
비자림로 지키기 운동을 계기로 환경영향평가 등 대규모 토목공사의 제도적 허점이 낱낱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린씨가 말했다. “처음엔 절차를 잘 몰랐어요. 환경영향평가라는 말도 잘 몰랐어요. 그래서 질문했죠. 조사가 제대로 안 됐으니 제대로 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비자림로는 원래는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조사를 간략하게 하려고 공사구간을 쪼갠 뒤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받았더라고요. 환경영향평가를 하더라도 그 평가를 공사하고 싶어 하는 개발업자가 용역을 줘서 하는 구조더라고요. 엉망으로 서류를 작성해도 환경부는 확인도 없이 도장을 찍어주고, 멸종위기종 등이 나와도 저감 대책을 세우면 공사할 수 있도록 하는, ‘어찌 됐던 공사는 한다’는 그런 제도였어요.”
김순애 제주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말했다. “‘없다’고 했던 ‘법정관리종’이 10여 종 나왔다면 그 서류는 ‘거짓’인 거잖아요. 그런데 행정(환경부)과 법원은 ‘부실 작성’ 정도일 뿐이며 그래서 ‘공사를 못하게 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보더라고요. 팔색조를 확인했는데 일부러 감추는 정도가 돼야 한다는 게 그쪽 생각이에요. 새로운 시각으로 법을 해석하려 하기보다 한번 만들어진 관행대로 하려는 성향이 강해요. 그래서 비자림로 시민모임이 2심에서 대법원으로 가지 않기로 했어요. ‘재판에 희망이 없다’고 본 거죠. 대신 그간의 운동 결과가 지켜지도록 확인하고 기록하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이런 고민으로 2024년 2월 전국적으로 108개 환경·시민단체가 모여 ‘환경영향평가 제도 개선 전국연대’가 꾸려졌다.
비자림로에 모였던 사람들은 제주 제2공항 공사 반대 운동에서도 모이고 있다. 7월30일 오전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와 성산읍 수산리·온평리의 ‘숨골’을 찾았다. 숨골은 한라산과 여러 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이 굳을 때 만들어진 지형이다. 쉽게 말해 지하 동굴로 이어지는 구멍이다. 숨골은 한라산·오름에서 지하 동굴까지 제주 생태계를 하나로 잇고, 생태계와 사람을 이어주는 통로다. 제주 동부와 서북부에는 천천히 흘러내린 점성이 약한 용암(파호이호이용암)이 넓은 바위지대인 벵듸·빌레 지형을 형성한다. 이런 지형에서 숨골은 빗물을 빨아들여 홍수를 막고 지하수를 채워준다. 제주도민들이 마시는 물은 대부분 이렇게 만들어진 지하수다.(2022년 기준 제주 수자원 중 지하수 이용률 96%)
그러나 이 귀한 숨골이 제2공항 공사를 하는 덴 장애물일 뿐이다. 2018년 말 국토교통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제2공항 예정 터’에 숨골이 8곳밖에 안 된다고 발표했다. 이 역시 부실조사였다. 2019년 홍 대표 등이 참여한 ‘제2공항 저지 도민회의’ 숨골조사단 조사로 185곳이 추가로 확인됐다.
홍 대표가 말했다. “현장에 오니 주민들이 ‘내가 아는 것만 8개가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여기는 숨골이 없으면 (물이 빠지지 않아) 습지가 되는 지형이에요. 뒤에 국토부가 ‘숨골 153개’라고 정정했죠. 그런데 교육적 가치, 구멍의 크기 등의 자의적인 평가 기준을 만들더니 보전가치가 있는 건 22개뿐이라고 했죠. 숨골의 가치는 지하수 함양에 있는데, 일부러 가치를 낮추려는 의도였어요. 살펴보니 예정지에만 숨골이 300여 곳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2024년 7~8월 전수 조사하고 있어요.”
숨골은 제주도 조례에 따라 지하수보전자원 1등급으로 지정돼 있지만, 보전 관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3년 280여 개가 지정된 이래 실태조사도 전무한 상태다. 2017~2018년 애월읍에서 축산 농가들이 분뇨 수만t을 숨골에 그대로 내버려 지하수 오염으로 이어졌다. 각종 도시개발·도로확장으로 제주도 지하수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고 있어 숨골·곶자왈 등 제주 특유의 지하수 함양원 보존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도 주목된다. 제주도 제주지하수연구센터 조사에 따르면 제주도 지하수 수위는 13.54m로 한 해 전보다 1.97m나 낮아졌다. 등록된 용천수 1025곳 중 500여 곳 이상이 메말랐다는 조사결과도 나온 바 있다.
이날 두 곳의 숨골을 확인했다. 밭 한복판에 있는 숨골이었다. 쪼그려 앉아 고개를 대보니 한기가 올라왔다. 깊숙이 양치식물과 이끼가 자랐다. 다만 비료 포대가 방치되는 등 보존관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비가 오면 이 밭의 농약·비료가 그대로 지하로 흘러들어 도민의 식수가 될 테다. “제주 동부는 오름이 집중된 곳이에요. 숨골에 대한 태도를 보면 오름에서 터진 용암이 동굴·숨골과 연결돼 있다는 걸 애써 무시하려는 것 같아요. 숨골이 이렇게 많다는 건 예정부지가 대부분 동굴 위라는 걸 예상할 수 있어요. 안전할까요? 안전을 떠나서 공항을 놓는다는 건 불투수층을 그만큼 만든다는 거잖아요. 물을 구하지 못해 육지에서 구해 와야 할 수도 있어요.” 홍영철 대표의 지적이다.
비자림로 현장에서 김수열 시인이 말했다. ‘하여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는 일은/ 하늘로 오르는 신의 길목을 내는 일이며/ 우리의 내일을 하루만큼씩 이어간다는 것이고/ 한 그루의 나무를 베어낸다는 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신의 길목을 끊는 일이며/ 우리의 내일을 하루만큼씩 줄여간다는 것이다’(‘낭 싱그는 사람을 생각한다’ 중)
비자림로 지키기 운동에는 많은 예술가가 결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것이 2020년 4~5월 벌어진 ‘낭 싱그레 가게’(제주말로 ‘나무 심으러 가자’) 활동이었다. 다양한 전시회, 공연, 문화제 등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울림이 큰 예술작품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회화·판화가 고길천 작가는 삼나무에 톱날이 들어갔다 멈췄다 했던 당시 흔적을 프로타주(물체의 무늬를 응용한 회화기법) 작업으로 살려냈다. 삼나무의 잘린 밑동을 이용한 작품들을 시민들과 나눈 고 작가를 7월29일 오후 제주 시내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내가 지금까지 작업한 것 중 제일 보람 있었어요. 일반인, 시인, 화가, 공연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참여해서 나무를 심고 공연하고 전시하고 다 했어요. 말 그대로 공동체 예술이 된 거죠. 그렇게 작품을 그리고 전시를 했더니, 이번에 새로 공사를 시작하면서 아예 밑동을 바로바로 치워버리더라고요. 남은 밑동으로 뭘 할지 두려운 건지….” 고 작가가 말했다. “삼나무는 제주 사람들 먹여 살린 나무예요. 방풍용으로 심어서 밀감나무를 지켜줬잖아요. 그걸로 제주 사람들이 먹고살았죠. 이제는 필요 없다고 잘라버린다고요? 사람들이 부정적인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죠. 나무를 자르면 나무만 없어지나요? 온갖 생명체가 다 사는 게 나무잖아요.”
제주를 떠나오는데 그린씨가 ‘제주라는 이름의 고래’라는 자기 작품을 보여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주를 하나의 생명체, 고래로 생각하면서 그림을 하나 그려봤어요. 이 고래는 큰 바다를 떠다니는 중이에요. 숨구멍이 있는데 한라산도 숨구멍이고 오름이 다 숨구멍이에요. 그걸 혹이 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렸어요. 사람들은 거기서 물을 받아다 쓰고 그런 모습이 고래의 줄무늬를 이루는 거죠. 고래는 바다 생태계에서는 ‘바다숲’과 같은 역할을 하죠. 제주도는 지구 입장에서는 고래 한 마리 아닐까요.”
*‘나무전상서’는 이번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수고하신 김양진 기자와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