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한 여자는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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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디지털 성범죄가 여성들 옥죄면서 성적 매력 표현하는 여성 아티스트에 대한 반감 커져… 하지만 ‘성적 매력 근절’은 불가능
케이팝 그룹 ‘키스오브라이프’(KISS OF LIFE)는 2024년 7월1일 신곡 ‘스티키’(Sticky) 발매와 함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에스투(S2)엔터테인먼트 제공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주관 방송사인 올림픽방송서비스(OBS)는 2024 파리올림픽에서 촬영진에게 여성 선수를 남성 선수와 같은 방식으로 촬영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야니스 엑사르코스 OBS 최고경영자는 여전히 무의식적인 편견 때문에 촬영진과 편집진이 남성보다 여성을 더 많이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며, 여성 선수들은 더 매력적이거나 섹시해서 올림픽에 출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OBS는 2020 도쿄올림픽 때부터 성평등 지침을 수정해왔다. ‘외모, 옷, 특정 신체 부위에 불필요하게 초점을 맞추지 말 것’ ‘성별 고정관념을 피할 것’ ‘성차별적이지 않은 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할 것’ 등이 지침 내용이다. 이러한 촬영·방송 지침은 두 가지를 시사한다. 첫 번째, 이미지는 촬영자와 편집자에 의해 성차별적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 두 번째, 성차별적인 이미지는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로부터 영향받고, 다시 그 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월킹 둘러싼 ‘여성 착취 vs 해방’ 논쟁


2024년 7월1일 케이팝 그룹 ‘키스오브라이프’(KISS OF LIFE)가 신곡 ‘스티키’(Sticky) 발매와 함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을 때다. 일부 소셜미디어(SNS) 이용자가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이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하며 춤을 추는 동작과 이 동작을 할 때 몸이 강조되는 것 같은 촬영이 선정적이라며 이를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인 시선이라고 비판했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키스오브라이프의 뮤직비디오는 위에서 이야기한 올림픽 촬영 지침의 성평등한 가치관과 충돌하는 성차별적인 영상으로 보일 수 있다. 실제 그러한 맥락에서 비판받았다.

하지만 영상 이미지를 둘러싼 성차별과 성평등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키스오브라이프의 뮤직비디오를 둘러싼 논란은 세 가지 질문을 남긴다. 첫 번째, 성적 매력을 강조하는 퍼포먼스는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퍼포먼스와 언제나 동일한 것인가. 두 번째, 여성이 성적 매력을 표현하는 행위는 성차별을 강화하는가. 마지막으로 ‘성적 대상화’란 언제나 나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키스오브라이프의 ‘스티키’ 안무 가운데 엉덩이를 강하게 흔드는 춤인 ‘트월킹’에 대해서만 설명하자면 트월킹은 서아프리카 여성들의 춤 ‘마푸카’(Mapouka)에 문화적 기원을 둔다. 마푸카는 신과 연결되는 행위를 의미했으며, 기쁨을 찬양하고 종교적인 숭배를 위해 추거나, 결혼식에서 공연되곤 했다. 노예제로 미국에 온 아프리카인들이 흑인 교회로 마푸카를 들여왔으며, 이후 블루스와 재즈 댄스에도 영향을 미쳤다. 트월킹은 2013년 팝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가 싱글 ‘위 캔트 스톱’(We Can’t Stop)의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이며 미국 팝 문화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때도 다수 언론이 트월킹을 불쾌하고 역겹다고 묘사했으며, 어떤 비평가들은 트월킹이 여성을 착취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한다고 비판했다.

케이팝 그룹 키스오브라이프는 2024년 7월9일 ‘스티키’로 데뷔 1년 만에 음악방송 첫 1위를 차지했다. 키스오브라이프 엑스 갈무리


하지만 미국 팝 가수 리조는 테드(TED) 강연에서 이러한 비판에 맞서 자신은 흑인성과 흑인 문화를 되찾기 위해, 그리고 ‘뚱뚱한’ 흑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몸을 긍정하기 위해 트월킹을 춘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트월킹이 놓인 역사·문화적 맥락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여성의 특정한 신체 부위를 강조하는 퍼포먼스가 언제나 성적 착취와 연결되진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역사를 왜곡해 공연자의 주관이 탈각된 관음적인 시선 안에 퍼포먼스를 가두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키스오브라이프의 뮤직비디오에서 트월킹은 주관이 삭제되고 관음적 시선 안에만 갇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관음적 시선과 섹슈얼한 매력을 뽐내고자 하는 아티스트의 주관성은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문제는 여기서 복잡해진다. 여기서 되새겨볼 리조의 강연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섹시하니까 트월킹을 춘다. 성적 대상이라서가 아니고.”(I twerk because I’m sexual, but not to be sexualized.)

시선의 주체를 이성애 남성으로 전제


이 같은 리조의 주장에 어떤 이들은 ‘주체적 섹시’라는 말을 떠올릴 수도 있다. ‘주체적 섹시’란 여성이 타의가 아닌 자기 선택으로 자신의 섹슈얼한 매력을 어필하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찾기 어렵지만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한국 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말이 됐다. 처음부터 조롱의 의미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말은 소셜미디어에서 자주 비난의 언어로 쓰인다. 아무리 주체적인 선택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여성이 성적으로 대상화될 수밖에 없는 이미지를 생산해낸다는 점 때문이다. 여성의 성적인 이미지 범람이 성차별 구조를 재생산할 것이라는 우려, 대중문화의 파급력 때문에 아동·청소년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는 걱정이 그러한 비판의 주된 이유였다면, 점차 또 다른 공포가 강화되고 있다. 성적으로 매력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디지털 성범죄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공포다.

미국 팝 가수 리조는 2021년 테드(TED) 강연에서 자신은 흑인성과 흑인 문화를 되찾기 위해, 그리고 ‘뚱뚱한’ 흑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몸을 긍정하기 위해 트월킹을 춘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테드 유튜브 갈무리


앞선 우려들, 그러니까 ‘여성의 성적인 이미지가 성차별 구조를 재생산한다’는 우려에는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시선에 남성의 시선만 존재할 것이라는 이성애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테레사 드 로레티스, 쇼히니 초두리 같은 페미니즘 영화이론 학자들이 오래전부터 분석·제시했듯 동성애적인 시선은 배제된 것이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비판할 때 그 시선의 주체는 이성애 남성으로만 설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여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면 이 또한 성차별 구조를 강화시킨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여성에 의한 여성의 성적 대상화도 상대를 불쾌하게 하고 착취한다면 분명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성애자 여성이 남성에게 성적으로 매력을 발산하는 것 또한 잘못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이성애 여성의 중요한 정체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논의들은 짧은 소개에서 그치려고 한다. ‘성적’(性的)이라고 할 때 이성애로만 설명되지 않는 논의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자체가 중요한 이유는,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둘러싼 논의가 이성애적 전제에서만 이뤄지지 않음을 밝힐 수 있어서다. 이성애가 여성주의에 반하는 것 또한 아니다. 여성이 이성에게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고자 하는 욕망에 솔직하려는 노력은 분명 또 다른 여성주의적인 고민이다.

‘여성이 성범죄 유발한다’ 오랜 편견과의 투쟁


이 시대의 공포로 부상한 디지털 성범죄 이야기를 해보자. 여성 아티스트가 자신의 성적 매력을 미디어에서 어필하는 것을 우려하고 나아가 비난에 나서는 행위는 성 엄숙주의로 느껴지며, 여성주의적으로는 퇴보한 것처럼 보인다. ‘슬럿워크’(Slut Walk)를 기억하는가. 슬럿워크 운동은 2011년 4월3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시작돼 세계적으로 확산한 시위 행진이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여성은 헤픈 여자(Slut) 같은 옷차림을 피해야 한다”는 캐나다 경찰 마이크 생귀네티의 발언으로 촉발됐다. 여성들이 야하다고 비난받는 옷을 입고 거리를 행진하는 슬럿워크 운동은 여성의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남성 중심 시각에 대한 저항이었다.

같은 해 9월 한국에서도 ‘잡년 행진’이라는 이름의 슬럿워크가 열렸다. 당시 여성가족부 앞에서 109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던 성희롱 해고 여성 노동자를 지지하는 행사였다. 농성 중인 성희롱 피해자는 회사로부터 ‘풍기문란’이라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잡년 행진’ 또한 성폭력의 구조보다 피해자 여성에게 폭력의 책임을 묻는 사회에 대한 저항이었다. 슬럿워크 운동만 따져보더라도 여성의 성적 매력에 성폭력과 성차별의 책임을 묻지 않기 위해 저항한 것이 13년 전 일인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가 심화하면서 성적으로 매력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범죄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공포감’도 커졌다. 게티이미지뱅크


여성의 성적 이미지에 대한 지금의 보수적 우려가 슬럿워크 운동 시대와 다른 점은 온라인에서 이미지를 재가공해 대량 확산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온라인 성범죄의 파급력을 겪어본 세대의 특수성과 결부돼 있다는 데 있다. 온라인 성범죄 시대에 슬럿워크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디지털 성범죄는 범죄자와 안전망 문제


다시 올림픽 촬영 지침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성차별을 방지하는 올림픽 촬영 지침이 유효하고 중요한 까닭은 올림픽의 근본적인 목적이 성적 매력에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올림픽의 촬영과 편집이 성적 대상화를 근원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그러한 노력에도 어떤 시청자들은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을 보며 사적이고 개별적이며 고유한 방식으로 성적 매력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근절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성적 매력이 발산되는 그 자체를 근절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매력을 강조하거나 성적 매력을 재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정서적·경제적 주도권과 선택권을 빼앗고, 의견을 묵살하는 것을 비판하는 데 있다. 온라인 성범죄가 여성의 성적 주도권을 옥죄는 시대에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착취와 폭력은 더 첨예해지고 통제하기 어려워졌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자신의 성적 매력에 자부심을 느끼고 이를 표출하는 여성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성범죄에 관대한 국가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연혜원 ‘퀴어돌로지’ 공저자·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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