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
인공지능과 기후변화, 자율주행 자동차…. 우리의 삶에 과학이 끼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져가는 건 자명하다. 그런데 정확한 정보를 고르는 선구안은 왠지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진다. 정부의 과학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이는 국립과천과학관 연구사인 강성주 박사(42)가 지향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복잡한 세상의 최신 과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지 어느 때보다 나침반이 필요한 시대다. 유튜브 인기 채널 ‘안될과학’(활동명 항성)에서 과학을 통한 소통에 매진하는 강 박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
-2020년 하반기 ‘안될과학’에 합류하셨죠.
“한국천문연구원을 관두고 잠시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시행하는 과학융합 강연자 저술가 과정 등을 다녔어요. 거기서 여러 좋은 분들을 만나며 일종의 ‘과학 인맥’이 늘어난 거죠. 그 덕에 우연찮게 ‘안될과학’의 대표적 과학자인 궤도 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원래부터 안될과학과 궤도 님의 열렬한 ‘찐 팬’이었거든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롤 모델이기도 했고요. 근데 궤도 님과 얘기를 나누며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저랑 너무 똑같은데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바로 게스트 제안을 해주셔서 신나서 출연했는데, 시청률도 잘 나오고 반응도 나쁘지 않았나 봐요. 그때부터 정식으로 합류하게 됐습니다.”
-안될과학이 이렇게 인기 많은 이유가 뭘까요.
“재밌잖아요, 하하. 뭣보다 과학으로 대중과 소통한다는 원칙을 잘 지키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해외 대학이나 연구기관은 ‘아웃리치(outreach)’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만큼 한국말로 대체어를 찾기 마땅치 않지만, 일반 시민들을 위한 봉사 지원 활동 같은 걸 뜻하죠. 안될과학은 최신 과학정보를 시청자 눈높이에 맞춰서 편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죠. 아시겠지만, 한국인은 과학에 대한 기본 지식도 많고 이해도도 상당히 높아요. 때문에 이런 채널에 대한 갈증이 존재해왔고, 이를 안될과학이 채워주고 있는 게 아닐까요.”
“맞아요. 단순히 좀 안다고 해서 가르치려 들었다면, 이렇게 호응이 크진 않았을 거예요. 함께 정보를 나누며 유쾌하게 대화하는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쓰죠. 저희도 그렇지만, 전문가들을 모실 때도 재밌게 설명할 분을 선정하려 고심을 많이 합니다. 채널을 보시는 분들이 과학에 친근하게 다가오도록 돕는 게 주목적이니까요.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님이나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님 같은 분들이 먼저 길을 잘 닦아 오신 덕도 크죠. 아울러 저희가 ‘학계’를 절대 놓고 있지 않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예요.”
-학계를 놓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전문성을 유지하며 흐름에 뒤처져선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안될과학 같은 유튜브 채널은 어떤 정부나 대학 기관이 아니잖아요. 때문에 구독자 수가 늘어나면 영향력은 커지지만, 그게 어떤 신뢰성이나 위상을 보장하는 건 아니거든요. 최신 동향과 새로운 연구 성과를 계속 파악해야, 정통 학계도 수긍하고 대중도 인정하는 거죠. 저 역시 한국천문학회와 국제천문연맹, 한국천문올림피아드 등에 소속돼 활동하는 이유가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자격이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으로 안될과학에 참여한 뒤로 연구원으로 재직할 때보다 논문을 더 많이 읽는 거 같아요, 하하.”
-과학관 연구사이기도 한데,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나요.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요. 잠 좀 줄이면 다 가능합니다. 과학관 퇴근 뒤에 안될과학 출연하고 집에 가면 보통 새벽 1, 2시쯤 돼요. 논문 보고 자료 정리하다 보면 하루 서너 시간 정도 잡니다. 물론 피곤하고 지칠 때도 있죠. 하지만 정신건강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살짝 버겁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거 못해서 스트레스받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나요.”
-좋은 채널인데 재정 지원 같은 걸 받으면 어떨까요.
“아…, 그건 저희가 제일 피하고 싶은 거예요. 실은 지금도 여러 곳에서 프로젝트 제안을 많이 해주고 있으세요. 감사한 일이지만, 저희로서는 아주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저도 공무원인지라 다소 민감한 부분이 있고요. 뭣보다 정부건 기업이건 어디에 얽매이면 안될과학의 근본정신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요. 자유롭게 과학을 탐구한다는 본질이 변한다면 저희가 이 일을 하는 이유가 사라지는 거죠.”
“어려운 질문이네요. 조심스럽긴 한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 이대로는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긴 힘들다고 봅니다. 한국인은 교육 수준도 높고 과학에 대한 이해도가 훌륭해요. 미국만 해도 여전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거든요. 안될과학이 이렇게 인기 있는 것도 그걸 증명하죠. 문제는 시스템이에요. 우리나라 정부나 대학 연구기관은 1년 회계연도에 맞춰서 ‘실적’을 내놓아야 해요. 그렇다 보니 연구자들이 장기적인 실험을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예요. 연구 결과를 담은 보고서 제출을 더 중요시하는 분위기를 바꾸지 않는 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성과를 얻기란 요원할 것 같아요.”
-외국도 연구자가 성과를 내놓긴 해야 하잖아요.
“맞습니다. 그런데 그 성과를 무엇으로 판단하는가에서 결정적 차이가 납니다. 첫째로 해외에선 ‘과정’도 실적으로 받아들여져요. 10년 프로젝트가 있다고 칠게요. 미국이나 일본은 1, 2년 때 실험을 통해 이런저런 오류를 발견했다는 것도 값진 소득으로 여겨요. 우리는 아니죠. 작게라도 ‘진전’이 있어야만 그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과학에서 오류를 제거하는 건 절대 정체나 답보가 아니거든요. 여기서 두 번째 중요한 차이가 나오는데, ‘실패’도 성과로 본다는 겁니다. 어떤 연구에서 원하는 결론을 얻지 못했다면 그것도 뭔가를 배운 거니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거죠. 그래야 다음 연구에선 그 방식을 배제하고 다른 길을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이런 정책적 인식이 바뀌어야 우리도 과학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나로호 발사 같은 큰 성공도 거뒀잖아요.
“네, 정말 대단하죠. 해외의 1/10쯤 되는 인력과 재원으로 그걸 해냈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근데 생각해보세요. 우린 언제까지 이런 행운만 바라며, 현장의 희생과 사명감에 기대야 할까요. 그리고 과연 이런 기적이 계속 이어질까요. 외국 과학자들을 만나면, (한국의 성과에) 놀라는 게 아니라 걱정부터 합니다. 괜찮으냐고. 그러다 큰 사고 나는 거 아니냐고요. 당장 지원을 외국만큼 늘리자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잖아요. 다만 이렇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방식으로는 과학 발전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과학은 차근차근 쌓아가는 거잖아요.”
-이런 구조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주 조금씩이지만, 나아질 거란 희망은 보입니다. 이전보다 정부나 학계도 많이 바뀌고 있어요.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들은 여전히 ‘성과’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단 느낌이에요. 과학을 대하는 자세가 너무 경직됐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대중들이 과학에 애정을 많이 가져주는 게 중요합니다. 요즘 한국 언론이나 국민이 ‘나사(미 우주항공국) 제임스웹 우주망원경 관측 결과’에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국내 과학정책 등에 큰 영향을 끼치거든요. 안될과학도 그렇게 분위기를 바꾸는데 기여하려고 노력해야죠.”
“그건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 봅니다. 여전히 과학을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적지 않아요. 20세기에는 아이들이 꿈꾸는 직업이 몇 개 없었죠. ‘로봇 태권V’ 같은 공상과학(SF) 만화가 큰 인기를 끌다 보니, 과학자가 매력적이었죠. 지금은 세상이 워낙 다양하고 복잡해졌잖아요. 웹툰 작가나 유튜버 같은 새로운 직업이 눈에 들어오니, 과학자가 잘 눈에 띄지 않을 뿐이죠. 오히려 요즘 만나본 아이들은 질문 수준이 엄청 높아요. 구체적이고 예리합니다. 과학 인력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아요.”
-부모들도 자녀들이 과학자가 되길 바랄까요.
“문제는 바로 그 대목이죠. 사회적으로 과학자를 선호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요. 아마 경기도 나쁘고 살기가 팍팍하다 보니 과학자란 직업이 전망이 어둡다고 보는 게 아닐까요. 정부 정책 같은 걸 봐도 과학자를 귀하게 여긴다는 느낌을 받긴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돈 많이 버는 과학자들도 꽤 있어요, 하하. 게다가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막는 분위기는 아니잖아요. 긍정적인 요소와 불안한 요소가 뒤섞여 있지만, 그럴수록 어른들이 더 잘해야겠죠. 과학의 매력에 빠진 어린이들이 그 꿈을 자연스레 이어갈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과학현황지수(SOSI·State of Science Index)’라는 게 있다. 글로벌기업 3M이 2018년부터 17개국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인식 조사인데, 나라마다 사람들이 과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수치로 보여준다.
지난해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은 86%가 “과학이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세계 평균 52%보다 무려 34%포인트가 높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우려 역시 다른 나라보다 높다. 한국인은 약 80%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잘못된 과학정보가 퍼지고 있다고 봤으며, 76%가 기술의 변화에 따른 고용시장의 변화를 걱정했다.
과학현황지수를 봐도 한국인처럼 과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나라는 드물다. 그런데 그 관심만큼 과학정책을 중시하고 과학자를 우대해왔는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케이팝 같은 한국의 소프트 콘텐츠가 세상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는 지금, 나라의 근간이 되어줄 기초과학을 우리는 얼마나 잘 보살피고 키워가고 있을까. 일단 ‘안될과학’ 등을 통해 과학을 향한 관심부터 다시 한번 환기시켜보자. 분투하는 청년들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실어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