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직원은 맞고, 통근버스 기사는 아니다? 불법파견 판결 기준은
사건번호 : 2020가합558260 (불법파견 불인정)
사건번호 : 2020가합578790(불법파견 인정)

현대차가 구속력 있는 지시를 내렸는지가 승패 갈라
자동차 공장서 지시 있었다면 ‘파견 근로자’로 판단
2차 협력사도 인정 가능해 분쟁 전선 더 넓어질 수도


하청 근로자와 원청 간의 불법파견 소송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한 두 소송에서 엇갈린 판결이 나와 주목받고 있다.

공장 버스 운전기사들이 제기한 소송에서는 현대차 측이 승소했지만, 공장 부품 조립 근로자가 제기한 소송에선 근로자 측이 이겼다. 협력 업체 근로자가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현대차가 구속력 있는 지시를 했는지가 각 재판의 승패를 갈랐다는 분석이다. 특히 공장 안에서 업무 지시가 이뤄졌다면 2차 협력 업체 근로자도 파견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불법 파견 분쟁의 전선이 2차 협력 업체 근로자들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울산공장 버스 운전자, 직고용될 수 없어”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정회일 부장판사)는 지난 7월 A씨 등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직원들의 출퇴근용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 10명이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2020가합558260).

원고들은 현대차와 구내 버스 위탁계약을 맺은 B사 소속으로 일해왔다. 운전 외에도 차량 정비와 주유 지원 등의 업무도 맡았다. 이들은 본인들이 파견근로자라고 주장하면서 2020년 현대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파견 상태로 2년 이상 근무했기 때문에 현대차 정직원으로 고용돼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파견법은 2년 이상 파견 근로자로 근무한 직원은 사업주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현대차 공장 통근버스.  /사진=연합뉴스
현대차 공장 통근버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법원은 이들을 파견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중요 기준 중 하나인 '업무 수행에 대한 직·간접적인 지시'가 없었다고 봤다. A씨 등은 현대차가 아닌 B사의 지시를 받고 업무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원고들은 "현대차가 제공한 구내 버스 운행 정보가 지시를 받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B사와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 것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현대차가 구속력 있는 지시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법원은 원고들의 업무가 현대차의 핵심사업인 '자동차 생산 및 판매'와는 무관한 업무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재판부는 "운전업무는 자동차 제조 및 판매와 명백히 구별된다"며 "현대차 총무팀 소속 근로자들과도 서로 업무를 보완하거나 협업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지 않았으므로 파견 상태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판결 가른 직·간접적인 지시 여부 … 2차 협력 업체도 인정 가능

비슷한 시기 또 다른 법정에선 정반대 판결이 나왔다. 현대차의 협력 업체 근로자들의 파견 지위가 인정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김도균 부장판사)는 협력 업체 근로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2020가합578790).

현대차와 도급계약을 맺은 1차 협력 업체 E사의 근로자 C씨는 2017년 3월부터 2019년 6월까지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보조배터리·선루프 장착 업무를 맡았다. D씨는 현대차 납품사와 도급계약을 맺은 2차 협력 업체의 근로자였다. 그는 2018년 5월부터 아산공장에서 서열(부품 나열)·불출(부품 운반) 등의 생산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현대차 아산공장.  /사진=현대차
현대차 아산공장. /사진=현대차
이들은 자신들이 파견 근로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2020년 현대차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현대차는 "C·D씨 모두 협력 업체의 지휘·명령하에 근무했다"고 맞섰다. 특히 D씨를 두고는 "2차 협력 업체는 현대차와 직접 계약을 맺은 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현대차와는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직·간접적인 업무 지시가 있었다"면서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C씨 등이 수행한 부품 조립작업 업무는 현대차의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업무"라며 "현대차는 서열 모니터와 안전표준작업서를 통해 작업방식을 상세하게 지시했다"고 판단했다.

D씨도 공장 안에서 한 서열 업무에 한해선 파견 근로를 했다고 인정받았다. 재판부는 "협력 업체의 개입 없이 D씨의 서열 모니터에 서열 정보가 제공됐다"고 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