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시총 11배 상승…도쿄일렉트론의 '힘' [글로벌 종목탐구]
네덜란드 ASML 능가하는 투자 효율
5년간 사상 최대인 1조엔 이상 투자


“기존보다 2.5배 빠른 초고속으로 회로를 깎아내는 획기적인 기술 혁신입니다.”

지난해 12월 일본 국내외에서 8만 명이 찾은 반도체 국제전시회. 가와이 도시키 도쿄일렉트론 사장은 신장비를 공개하며 그 성능을 강조했다. 관람객들은 기립박수를 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반도체 제조장비 대기업인 도쿄일렉트론의 시가총액이 지난해 처음으로 12조엔을 넘어섰다. 10년간 상승률은 11배로, 전 세계 경쟁사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 회사는 향후 성장을 위해 5년간 총 1조엔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해 ‘환갑’을 맞이한 회사지만, 성장에 대한 욕심은 여전하다.
10년간 시총 11배 상승…도쿄일렉트론의 '힘' [글로벌 종목탐구]

○도쿄증시 이끄는 반도체주

도쿄일렉트론은 올해 들어 활황인 일본 증시를 리드하는 종목 중 하나다. 지난 30일엔 2만7985엔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들어서만 주가가 16.58% 더 오르며 시총이 13조엔을 돌파했다. 도쿄증권거래소 내 시총 6위다. 2020년 20위에서 껑충 뛰었다.

도쿄일렉트론은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전공정’ 제조장치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제조장치 전체 매출은 세계 4위다. 웨이퍼에 막을 입히는 성막장치와 세정장치 등 8개 품목에서 세계 점유율 1~2위를 고수하고 있다.

웨이퍼를 칩으로 가공하는 ‘후공정’에 대응하는 장비 등 2개 품목도 육성해 이 분야에서도 점유율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반도체 성능 향상을 견인해온 것은 전공정 기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반도체의 연산 능력과 전기 효율 등의 향상이 늦어지면서 칩을 여러 개 묶어 성능을 높이는 후공정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10년간 시총 11배 상승…도쿄일렉트론의 '힘' [글로벌 종목탐구]
도쿄일렉트론의 왕성한 사업 개척을 뒷받침하는 것은 높은 연구개발(R&D) 투자 효율이다. R&D에서는 최첨단 제조장치로 독주하는 네덜란드의 ASML을 능가하는 투자 효율을 자랑한다. 기업의 최근 5기 상각전영업이익(EBITDA)과 연구개발비를 합산해 6~10기 전의 연구개발비 총액으로 나누면 R&D 성과가 나타나는 시점으로 여겨지는 5년 동안 투자가 얼마나 이익으로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도쿄일렉트론의 투자효율은 7.3배로 ASML(6.8배),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MAT·5.5배)를 크게 웃돈다.

투자자들의 기대는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시가총액은 10년 전보다 11배나 늘었다. 반도체 제조장비 1위 AMAT(6배), 2위인 ASML(9배)을 훌쩍 뛰어넘는 기세다. 라쿠텐증권 경제연구소의 이마나카 노부는 경쟁사를 압도하는 도쿄일렉트론에 대해 “제품군의 밸런스가 해마다 좋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제품군이 다양해지면서 불황에 대한 내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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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R&D 1조엔 투자

그러나 시가총액으로는 ASML(약 41조엔)에 한참 뒤처져 있다. 일본 금융정보 업체 퀵·팩트셋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최근 5년 평균 매출액 성장률(CAGR)은 ASML이 18%로, 도쿄일렉트론보다 3%포인트 높다. ASML은 수익성을 나타내는 매출액 대비 EBITDA 비율도 34%로, 도쿄일렉트론보다 4%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ASML은 최첨단 반도체 양산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치를 독점적으로 다루고 있어 향후 성장에 대한 기대가 높다. 도쿄일렉트론이 ASML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도쿄일렉트론은 앞으로 5년간 사상 최대인 1조엔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할 예정이다. 지난 5년 대비 60% 늘린 규모다. 생성 AI(인공지능) 보급 등으로 왕성한 수요가 기대된다. 이와이 코스모증권의 사이토 카즈카는 지난해 11월 창립 60주년을 맞은 도쿄일렉트론에 대해 “애니멀 스피리트를 잃지 않는 거인. 일본의 전통 제조업에서는 보기 드문 기업가 정신이 있다”고 평가했다. “레이저 신기술로 연삭장비 세계 1위인 디스코의 아성에 도전하는 등 업계에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참신한 기술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10년간 시총 11배 상승…도쿄일렉트론의 '힘' [글로벌 종목탐구]
R&D 영역이 넓어지면서 자체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기술, 인력 등 경영 자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도 성장을 좌우한다. 도쿄일렉트론은 2015년 AMAT와의 경영 통합이 결렬된 뒤 눈에 띄는 인수합병(M&A)이나 협력 사례가 없다. 대신 다른 기업이나 산학과 연계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실패를 탓하지 않는다. 다음 기회로 이어지는 배움이다.” 가와이 사장은 이런 메시지로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인력은 향후 5년간 일본 국내외에서 총 1만명을 신규 채용할 방침이다. 지난해 말 직원 수를 감안하면 지금보다 1.6배 많은 2만6000명 규모로 늘어난다. 5년 뒤 매출 3조엔 이상(지난해 2조2090억엔)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와이 사장은 “항상 세계 최고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