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바라고 주주환원을 해온 건 아니지만 좀 허탈하네요. 정책 기조가 나오면 먼저 나서기보다 그저 한동안 버티다가 못 이기는 척 동참하는 쪽이 더 이득인가 싶습니다.”

한 상장사 재무담당 임원이 지난 3일 정부가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중 자본시장 밸류업 관련 내용을 놓고 한 말이다. 주주환원 확대에 일찍 나섰다는 점이 오히려 기업에 제약이 되게 생겼다는 한탄이다.

정부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업이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을 늘린 경우 기업과 해당 기업 투자자에게 세금을 공제해줄 방침이다. 주주환원액을 직전 3개년 평균치보다 5% 이상 늘리면 초과분의 5%만큼 기업 법인세를 세액공제해주는 식이다. 이 기업 투자자의 배당소득은 기존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해 분리과세한다.

그런데 이는 내년부터 예년 대비 증가분에만 적용된다. 올해까지 3년간 5% 배당하던 기업이 내년부터 10%를 주면 세제 혜택을 받지만, 지난 3년간 배당 40%를 해온 기업엔 혜택이 ‘제로’인 구조다. 1월 정부가 밸류업 구상을 밝힌 이후에 올해 배당금을 늘린 기업이라면 그만큼 혜택을 받기 위한 기준만 높아졌다. 이 중엔 실적 성장세가 둔화해 배당 여력이 줄자 주요주주가 배당금을 아예 포기하고 일반주주에게만 배당한 기업도 여럿 있다. 이들은 올해 최대 여력으로 주주환원을 한 탓에 내년부터는 투자자의 외면을 받기가 더 쉬워졌다. 개인투자자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도 기업의 주주환원이 늘어야만 발동해서다. 실적 추이와 투자 여력을 따져야 해 기업이 해마다 무작정 주주환원율을 높일 수도 없다.

단순히 기업이 힘들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 같은 인센티브 구조는 중장기적으로 정책 신뢰성을 해친다. 이미 주주환원율이 높은 기업은 외면하고 중간이나 그 이하 수준인 기업에만 혜택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꾸준히 배당 정책을 개선해온 기업보다 단기 변화에 치중하는 기업이 유리해진다. 이런 풍토에선 어떤 사안에서든 ‘일단 최소한의 조건만 충족해두자’는 근시안적 생각이 퍼지는 게 당연하다.

정부는 모범생보다 ‘열등생’을 자극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란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결실을 내기엔 인센티브가 턱없이 적다는 게 기업들의 중론이다. 현금 여유가 많지 않은 기업엔 증가분의 5%만큼 세액공제는 별 의미가 없어 실질적인 열등생 지원책이 못 된다는 얘기다.

가장 빠르고 정직한 ‘돈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발표 이후 주가가 소폭이나마 상승한 종목은 대부분이 금융주와 일부 대형주다. 이번 정책이 증시 전반에 온기를 불어넣기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