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동 칼럼] 아이 낳지 않겠다는 결심 돌리려면
한국에서 인구 재앙이 시작된 것은 40년 전이다. 1983년 출산율이 인구를 유지하는 2.1명 아래로 떨어졌다. 초(超)저출산의 분기점으로 여겨지는 1.3명은 2002년 붕괴했으며 지난해엔 0.72명으로 쪼그라들었다. 40년이 지나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지목(일론 머스크)됐다.

‘잃어버린 40년’은 다시 3개의 기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1983년부터 산아제한정책이 폐기된 1996년까지가 첫 번째로, 무지(無知)의 시기였다. 출산율 하락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충격파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음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만들어진 2005년 전까지인데, 무사안일(無事安逸)의 기간이었다. 당장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아니니 나중에 대응하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마지막은 최근까지로 무책임(無責任)의 시기였다. 어렵사리 2005년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장관 직속으로 격하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격상시켰지만 이 위원회 회의를 두 번 주재하는 데 그쳤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그나마 단 한 번도 직접 회의를 연 적이 없다.

그간의 ‘3무(無)’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어느 정도 극복했다. 국가 존립 자체가 우려된다는 진단은 예전엔 볼 수 없던 상황 인식이다. 부총리급 부처인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고 별도 돈주머니인 인구위기대응특별회계를 편성하기로 해 적극 대응을 예고했다.

하지만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는 것만으로 정부가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정부는 끊임없이 청년과 신혼부부들에게 의견을 청취하고 기존 정책을 재점검해야 한다. 정책 수요층의 목소리를 듣는 확실한 방법은 최고위 회의에 이들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앞으로 대통령이 매달 여는 인구비상대책회의에 청년 대표 등이 당연직으로 참석해야 한다. 정부 발표에는 필요한 경우 지방자치단체, 교육청, 경제계, 언론계, 종교계 등과 연석회의를 한다고 돼 있을 뿐 청년 등은 배제돼 있다.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국회 예산정책처가 제기한 ‘저출생 극복 예산 과소 편성’ 지적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지난해 관련 예산은 47조원이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와 대학의 지역혁신 사업’ 3540억원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 황당하지만 사실이다. 이런 사례가 수도 없다. 이처럼 관련 없는 사업을 제하고 나면 지난해 실제 예산은 23조5000억원에 그쳤다. 국제 비교가 가능한 가족 예산으로 치더라도 30조원을 조금 넘는 정도로 국내총생산의 1.5%도 안 된다. 프랑스 스웨덴 등의 3%대 중반과는 비교 자체가 힘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도 2.3%에 이른다. 2006년부터 380조원을 투입했다는 정부 집계도 믿기 힘들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정확한 통계를 기반으로 새롭게 예산을 구축해야 한다.

이와 함께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들의 마음을 바꿀 ‘한 방’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육아휴직 급여처럼 조금씩 높여가는 것으로는 결심을 돌리기에 역부족이다. 지난달 대책을 보도한 기사에 붙은 댓글도 ‘기대 이하’가 주였다. 인천시처럼 자녀 1명당 총 1억원을 주는 방안, 2억원의 대출을 내준 뒤 자녀 수에 따라 원리금을 탕감해주는 방안(헝가리 모델) 등도 논의해야 한다. 이런 토론조차 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말마따나 ‘집단자살(collective suicide)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