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휴 잭맨, 라이언 레이놀즈와 숀 레비 감독이 지난 3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을 찾았다. /사진=뉴스1
배우 휴 잭맨, 라이언 레이놀즈와 숀 레비 감독이 지난 3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을 찾았다. /사진=뉴스1
최근 할리우드 스타 라이언 레이놀즈와 휴 잭맨이 서울 구로구 고척돔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영화 홍보차 투어를 진행 중인 이들은 숀 레비 감독과 함께 나라마다 중요한 문화적 경험을 하기로 약속했는데, 한국에서는 '프로야구 관람'을 택한 것이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높은 곳에서 야구를 보니 정말 몰입감이 있더라. 서울에서 너무 중요한 문화적 경험이라 생각했다"면서 "5000여명이 노래하는 걸 보고 놀랐다. 애플워치에 소음이 너무 크다고 계속 뜨더라. 마지막으로 이 알람이 떴던 게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에 갔을 때였다"며 감탄했다.

국내 프로야구 인기가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개막 후 70경기 만인 지난 4월 10일 100만 관중을 돌파한 데 이어 148경기에 200만, 217경기에 300만, 285경기에 400만명을 돌파하더니 전반기 마지막 날 600만명까지 넘어섰다. 총 418경기에서 605만7323명의 관중이 들어오며 사상 첫 '1000만 관중 돌파'를 넘보고 있다.

8년째 야구 직관을 다니고 있다는 A씨는 "관중이 늘어나면서 티켓팅도, 응원 분위기도 치열해졌다. 수도권은 전체적으로 관중들이 젊어졌는데 티켓팅이 어려워진 영향도 있을 것"이라면서 "예전에는 어르신들이 많아서 현장에서 가끔 대화도 나누곤 했는데 요새는 자녀들과 오는 게 아닌 이상 나이가 많은 분들만 있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고 전했다.

실제로 야구 열풍의 동력으로 2030 젊은 층의 화력이 꼽힌다. LG·KIA 등 6개 구단의 티켓 판매를 대행하는 티켓링크에 따르면 지난해 33%였던 20대 관중의 점유율은 올해 5.1%포인트가 늘어난 38.1%로 모든 세대 중 1위를 차지했다. 두산과 키움의 입장권을 판매하는 인터파크의 데이터를 보면 20대 관객의 비율은 코로나19 전인 2019년 21.8%로 30대와 40대보다 낮았지만, 이후 해마다 높아져 올해는 5년 전의 두 배에 가까운 42%를 기록했다.

특히 여성 팬층의 유입이 눈에 띈다. 티켓링크를 통한 전체 티켓 구매자 중 여성 점유율은 지난해보다 3.7%포인트 높아진 54.4%를 기록하면서 남성(45.6%)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A씨는 "원래 야구는 비교적 다른 스포츠에 비해 남녀성비가 비슷한 편이었다"면서도 "다만 과거에는 치어리더 문화가 강한 탓에 남성 취미 혹은 문화라는 편견이 깔려 있어 진입장벽이 높았다면, 최근에는 예능프로그램 등이 등장하며 다가가기 쉽게 인식이 바뀐 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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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덤' 문화가 야구에 녹아들면서 인기에 불을 붙였다는 시각도 있다. 14년 차 야구팬인 B씨는 "각 구단에 아이돌 나이대의 젊은 스타들이 대거 등장해 여성 팬이 더욱 많아졌고,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애정이 선수에서 구단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라고 짚었다. 이어 "마음만 먹으면 선수들과 직접 눈을 마주치고, 사인을 받고, 셀카를 찍을 수 있는 등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여성 관중의 힘은 구매력에서 나온다. 구단마다 유니폼 품절 현상은 물론, 각종 굿즈 또한 '오픈런'을 해야 손에 넣을 수 있을 정도다. 구단에서도 여성 팬 맞춤 컬래버레이션 굿즈 등을 내놓고 있고, 마케팅과 홍보 방향도 예전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고 전했다.

평균 10~20만원대인 콘서트, 페스티벌 티켓 가격에 비해 야구 경기 티켓은 1~4만원 선으로 저렴하다는 점도 강점으로 언급됐다.

야구 인기에 콘텐츠 업계도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KBO 리그 중계 독점권을 확보한 티빙의 월간 활성화 이용자 수(MAU)는 지난 4월 706만명, 5월 731만명, 6월 740만명 등으로 늘었다. 전년 같은 기간 540만명, 565만명, 574만명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1년 새 200만명 가까이 늘어났다.

이로써 티빙은 국내 1위 넷플릭스와의 MAU 격차를 356만명으로 크게 좁혔다. 기세를 이어 야구 토론 예능 프로그램 '야구대표자: 덕후들의 리그'까지 론칭한다.

CGV는 올스타전을 서울·인천·대전·광주·대구·수원 등 총 14개 관에서 생중계했는데, 전체 좌석 수인 2607석 중 2204석을 판매하며 객석 점유율 84.5%를 기록했다.

JTBC '최강야구'는 직관 경기 매진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14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리는 경기 티켓 예매에 15만명 이상이 몰리면서 이번 시즌 5경기 연속, 전 시즌 13경기 연속 매진 기록을 세우게 됐다.

지난해부터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는 C씨는 "남편이 아들과 야구 보는 게 로망이라 코로나19 이후 직관을 가게 됐다. 이후 아이가 야구 응원에 빠지게 되면서 강제로 야구인 가족이 됐다"며 "월요일을 시작으로 일주일 내내 '최강야구' 강제 시청을 당하고 월 2회 이상 직관을 가고 있다"고 전했다.
'최강야구' 포스터 /사진=JTBC 제공
'최강야구' 포스터 /사진=JTBC 제공
사실 '최강야구'는 프로야구 흥행의 덕을 봤다기보다는 오히려 '흥행 주역'으로 꼽힌다. A씨는 "엔데믹이 시작되면서 직관이 풀리는 시점에 '최강야구'가 시작했다. 주위에 새로 유입된 팬 중에는 '최강야구'를 보다가 직접 경기장에도 와보고 싶었다는 이들이 많다. 그렇게 야구장 응원 문화나 스포츠 자체의 매력에 빠지는 식"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최강야구' 시청을 기점으로 야구팬이 됐다는 D씨는 "경기 룰도 모르는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봤는데 덕분에 더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예능을 본다기보다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경험하고 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응원하는 팀도 생겼고, 친구랑 놀러 가듯 지방 경기까지 보고 왔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 방송 관계자는 "'야신' 김성근 감독을 캐스팅한 게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야구계 상징적인 인물이 출연하면서 과거 팬들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젊은 세대에게는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을 전했다.

이어 "프로그램이 프로야구 흥행에 어느 정도 기여했고, 그 기세를 몰아 인기가 지속되니 결과적으로 프로그램도 롱런할 수 있는 '윈윈(win-win)' 상황이 됐다"며 "젊은 층이 유입되면서 SNS 직관 인증이나 현장 숏폼 영상 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인기 팀의 성적이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당분간은 열풍이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