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역전세’ 현상을 노린 신종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찰이 수도권 일대 오피스텔에서 발생한 ‘역갭투자’ 사기 사건의 수사에 들어갔다.

21일 경기 고양경찰서에 따르면 이 경찰서는 부동산 임대인 한모씨(35) 등을 사기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한씨 일당은 2022년 하반기부터 전세보증금이 매매가보다 높은 오피스텔을 대상으로 역갭투자를 통해 보증금 일부를 빼돌리고 잠적한 혐의를 받고 있다.

확인된 피해 규모는 26가구, 30억원에 달한다. 피해 지역은 화성 김포 의정부 등 수도권 신도시와 서울 금천구 등으로 광범위하다. 한씨가 곳곳에서 ‘깡통 오피스텔’을 매입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역갭투자는 전세가가 매매가를 웃도는 깡통 주택을 노린 수법이다. 예를 들어 매매가 1억원, 전세가 1억2000만원인 오피스텔의 경우 신규 매수자는 기존 집주인에게 현금 2000만원을 받고 소유권을 이전받는다. 보통은 전세가가 매매가를 넘기지 않아 차액만큼 돈을 내고 집주인이 되는 갭투자 방식이 일반적이다.

한씨 일당은 이런 물건을 골라 매수한 뒤 수억원의 현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김모씨(29)는 “한씨는 역갭투자가 가능한 오피스텔만 집중 공략했다”며 “가구당 적게는 몇백만원에서 최대 수천만원의 이익을 취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기는 수십 채의 매물을 집중 매수하는 기존 전세 사기와 달리 여러 지역에서 소량의 매물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피해자들의 연대를 어렵게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울러 한씨가 특정 임대인에게서 오피스텔 매물을 여러 차례 사들인 정황도 포착되면서 일부 집주인과 범행을 모의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한씨와 거래한 임대인 정모씨(29)는 최근 발생한 대전 300억원대 전세 사기의 주요 피의자로 지목됐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인이 깡통주택을 떠넘길 때 새 임대인의 임대사업 능력을 검증할 법적 장치가 없어 발생하는 문제”라며 “집주인이 바뀌면 임대보증금 반환 책임을 기존 임대인과 새 임대인이 공동으로 지도록 하는 등 적극적인 사기 예방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정훈/김다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