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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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수출용 미사일의 사정거리 제한을 기존 300㎞에서 500㎞로 확대·허용한다. 불안한 중동 정세와 관련해 주요 무기 수입국 중 한 곳의 요청을 받아들인 데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이달 초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사거리가 최대 500㎞까지 늘어난 국산 미사일의 수출을 잠정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중동 일부 국가에서) 다연장로켓에 들어가는 미사일의 짧은 사거리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전했다. 대표적 국산 다연장 로켓인 ‘천무’는 아랍에미리트(UAE)가 2017년 수입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최근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한국은 2021년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로 미사일 개발 및 운용 관련 제한이 완전히 풀렸다. 하지만 수출용 미사일은 국제 다자 간 협의체제인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가 규정한 탄두 무게 및 사거리 규제를 받고 있다. 2022년부터 폴란드에 수출하고 있는 폴란드형 천무(호마르-K)와 함께 공급한 수출형 유도무기(CTM-290)의 사거리가 290㎞인 이유다.

탄두 중량 줄이고 사거리 확 늘려…'천무' 필두로 미사일 수출 늘어날 듯

정부의 수출용 미사일 사거리 연장은 2021년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 이후 우리 군의 전략무기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결정이란 평가다.

정부 관계자는 1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결정을 바탕으로 방위사업청이 곧 미사일 수출 관련 변경 사안을 최종 허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방산업체들은 수출용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들어갈 전망이다.

국산 다연장 로켓 ‘천무’(사진)의 유도 미사일을 필두로, 국산 미사일 및 무인드론 등의 수출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앞으로 탄두 중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사거리를 늘린 개량 미사일이 생산·수출될 것”이라며 “북한이 러시아에 수출한 사거리 900㎞의 단거리탄도미사일(KN-23)처럼 보다 강한 위력의 미사일 수출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번 결정이 국제 대량살상무기(WMD) 수출통제 체제인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해석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MTCR은 기본적으로 사거리 300㎞ 이상의 미사일 수출을 규제하고 있어서다. 정부 내부에서는 세부 규정을 이용해 통해 이를 우회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다연장 미사일 등 카테고리-2에 해당하는 미사일은 무기 수입국의 의도를 통제 기준으로 삼는다”며 “무기 수입국이 ‘우리는 WMD 목적으로 무기를 수입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 규제를 피할 수도 있다”고 풀이했다. 미사일 수출국은 수출 결정만 내리고, 수입국이 수입 의도를 잘 설명하면 된다는 얘기다. 또 MTCR의 감시·제재를 담당하는 국제 기관이 따로 없어 규정을 어기더라도 제재 부담은 크지 않다.

하지만 수출 대상국의 주변 국가와 외교적 마찰을 빚을 가능성은 부담이다. 사거리가 연장된 천무의 미사일이 수출되는 중동 국가들은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스라엘·이란의 전면전 위기 등으로 심각한 안보 불안을 느끼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국가가 최근 자국 무장 강화에 신경 쓰고 있는 이유다. UAE에 수출된 천무의 사거리가 500㎞로 연장되면 페르시아만 건너 이란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게 된다. 사거리 제한이 풀린 한국산 미사일·로켓포 등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활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러시아의 반발을 부를 수도 있다.

방산업계 전문가는 “한국 무기가 유럽에서 더욱 활약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미국이 NSC 결정 전에 사거리 확대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핵·화학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로켓 및 무인비행체(UAV)와 관련 장비의 확산을 통제하기 위해 1987년 설립된 국제 수출통제 체제다. 회원국은 자발적으로 지침을 준수하고 부속서에 명시된 무기 수출을 억제하도록 노력한다. 한국은 2001년 3월 33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