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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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기업 퀄컴이 인텔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오랜 기간 ‘반도체 제왕’이라 불린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이 인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글로벌 산업 트렌드가 된 인공지능(AI) 열풍에 편승하지 못한 게 결정적인 패착으로 작용한 것이다. 거래가 실제 성사될지는 미지수지만 180도 뒤바뀐 인텔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퀄컴, 최근 며칠간 인텔 인수 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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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퀄컴이 최근 며칠간 인텔에 인수를 타진해왔다고 보도했다. 이번 제안은 인텔이 지난 2분기 사상 최악의 실적 부진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주로 스마트폰용 반도체를 설계하는 퀄컴은 PC용 반도체인 중앙처리장치(CPU) 제조에 특화된 인텔을 인수해 사업 지평을 대폭 확장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퀄컴은 인텔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 자산 매각고 인텔의 일부 사업 영역을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텔의 현재 시가총액이 약 932억달러(약 124조5200억원)라는 점을 고려하면 인수가 성사될 경우 테크업계 역대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 거래로 기록될 전망이다. 앞선 최대규모 인수는 690억달러 규모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였다.

다만 퀄컴의 인텔 인수가 실제 성사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인텔이 제안을 받아들이더라도 경쟁 당국의 반(反)독점 심사 등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 2017년 브로드컴은 퀄컴 인수에 나섰지만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무산됐다. 싱가포르계 기업인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하는 것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엔비디아 역시 2021년 영국 반도체 기업 ARM 인수에 나섰지만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엔비디아를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소하며 무산됐다.

AI 흐름에 뒤처진 인텔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낮은 거래 타결 가능성에도 퀄컴의 인수 제안은 반도체업계에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연이은 전략적 실패로 오랜 기간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던 인텔이 결국 경쟁업체에 의한 인수 매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안젤로 지노 CFRA리서치 분석가는 “지난 2~3년간 반도체 업계의 AI로의 전환은 인텔에 큰 타격을 입혔다”며 “인텔은 적절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인텔은 1970년대부터 50년 가까이 CPU 시장을 장악했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스마트폰 중심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최근 몇 년 새 급격하게 진행된 AI 중심의 시장 트렌드도 따라가지 못했다. 2017년엔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도 놓쳤다. 투자금을 환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강점이던 CPU 시장에서조차 올해 경쟁업체인 AMD에 추월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인텔은 최근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지만 시장 반응은 차갑다. 인텔은 지난달 사상 최악의 2분기 실적을 발표한 뒤 전체 직원의 15%를 해고하고 투자도 대폭 줄인다고 발표한 데 이어 지난 16일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를 분사하고 유럽에서의 신규 공장 건설을 중단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기업 알테라의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지난 20일 인텔 주가는 21.84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올해 들어서만 54.3% 떨어졌고, 최고점이었던 2020년 초와 비교하면 70% 가까이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인텔의 미래는 내년 초 생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내년 초부터 1.8나노(18A) 공정에 들어간다는 인텔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내년에 각각 2나노 공정에 들어가는 TSMC나 삼성전자보다 일찍 1나노대에 진입하게 된다. 스테이시 라스곤 번스타인리서치 분석가는 WSJ에 “인텔의 미래는 내년 생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칩 제조 기술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며 “기술 리더십을 회복하면 수익률을 개선하고 고객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