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제가 아시는 분" "제게 여쭤보세요"는 그만 [고두현의 문화살롱]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 잘못 쓰는 우리 말글
경어법 혼동…무심코 자기 존대
이중 존칭에 사물 존칭도 여전
‘칠칠맞게’ ‘칠칠치 못하게’ 구분
‘쳐다보다’ ‘내려다보다’ 달리 써야
‘꽃잠’ ‘송아리’…멋진 우리말 많아
고두현 시인
경어법 혼동…무심코 자기 존대
이중 존칭에 사물 존칭도 여전
‘칠칠맞게’ ‘칠칠치 못하게’ 구분
‘쳐다보다’ ‘내려다보다’ 달리 써야
‘꽃잠’ ‘송아리’…멋진 우리말 많아
고두현 시인
1. “제가 아시는 분이 참석하신다고 해서 기대가 큽니다.” 2. “혹시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저에게 여쭤보세요.” 3. “할머니를 데리고 가야 하는지 선생님께 물어봐라.”
세 문장 모두 잘못된 높임말을 포함하고 있다. 첫 번째 문장의 “제가 아시는 분”은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말이어서 “제가 아는 분”이라고 해야 옳다. ‘아시는 분’은 ‘나’가 아니라 ‘그분’을 주어로 할 때 “저를 아시는 분”이라는 형식으로 쓸 수 있다. 두 번째의 “저에게 여쭤보세요”도 자기 존대이므로 “저에게 물어보세요”라고 써야 한다. ‘물어보다’의 높임말인 ‘여쭤보다’를 자신에게 적용하면 우스워진다. 세 번째는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 하는지 선생님께 여쭤봐라”로 각각 높임말을 쓰는 게 맞다.
"디자인이 예쁘시죠?"는 틀린 말
왜 이렇게 높임말을 잘못 쓰는 사례가 많을까. 경어법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문장의 주체를 높이는 주체경어법과 대화 상대를 높이는 상대경어법을 거꾸로 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밖에 나가셨다”와 같이 ‘시’를 붙여 문장의 주체인 ‘선생님’을 존대하는 게 주체경어법이다. 반면 “학생이 밖에 나갔습니다”와 같이 ‘학생’ 말고 대화 상대를 ‘습니다’로 높이는 게 상대경어법이다. 객체경어법은 문장 주체의 행위가 미치는 대상을 높이는 것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 하는지 선생님께 여쭤봐라”가 그런 예다.
높임말의 ‘시’는 사람에게만 붙이는데, 무생물인 사물에 ‘시’를 갖다 붙이면 황당한 ‘사물 존칭’이 된다. 요즘도 커피숍이나 마트, 백화점에서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이 제품 디자인이 너무 예쁘시죠?” “이 화장품은 피부에 정말 좋으세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럴 땐 ‘시’를 빼고 “커피 나왔습니다” “디자인이 너무 예쁘죠?” “피부에 정말 좋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오래전부터 많은 지적이 있었지만 아직 고쳐지지 않고 있다. ‘시’를 빼면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손님이 있다니, 알고도 못 바꾸는 종업원들의 속사정 또한 안쓰럽다.
이중 존칭도 잘못된 사례다. 서류나 우편물을 보낼 때 받는 사람 이름 뒤에 ‘님’ 또는 ‘귀하’라고 쓰면 되는 것을 꼭 ‘님 귀하’라고 겹쳐 쓰는 이가 있다. 이는 중복 높임이자 과잉 표현이기에 하나만 써야 한다. 간혹 이름 뒤에 ‘님’이나 ‘귀하’ 대신 ‘귀중(貴中)’이라고 쓰는 사람도 있다. ‘귀중’은 개인이 아니라 단체나 기관에 붙이는 단어이므로 ‘~협회 귀중’ 식으로 구분해서 써야 한다.
단어의 뜻을 몰라서 낭패를 겪기도 한다. 특히 “칠칠하다/ 칠칠맞다”와 “칠칠치 못하다”를 잘못 쓰는 일이 잦다. ‘칠칠하다/ 칠칠맞다’는 ‘단정하고, 야무지고, 알차다’는 뜻이다. 사전적으로는 ‘나무, 풀, 머리털 따위가 잘 자라서 알차고 길다’ ‘깨끗하고 단정하다’ ‘반듯하고 야무지다’는 의미를 지닌다. 부정적으로 쓸 때만 ‘칠칠치 못하다’고 써야 하는데 ‘칠칠맞다’고 잘못 쓰곤 한다. 표기법을 몰라서 ‘예컨대’ ‘단언컨대’ ‘바라건대’의 뒷부분을 ‘~데’로 잘못 쓰는 경우도 많은데 이럴 땐 ‘대’로 써야 옳다.
어휘를 잘못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방향을 가리키는 것과 관련된 사례를 보자. “하염없이 강물을 쳐다보던 그가 이윽고 발밑을 쳐다보며 걷기 시작했다”는 문장에서 “쳐다보다”는 잘못 쓴 표현이다. ‘쳐다보다’는 자기 눈보다 위에 있는 것을 볼 때 쓰는 말이다. 산꼭대기나 달은 ‘쳐다보다’ ‘올려다보다’라고 해야 맞고, 강물이나 발밑은 ‘들여다보다’ 또는 ‘내려다보다’라고 해야 한다. 노래로도 잘 알려진 김광섭 시 ‘저녁에’의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란 구절을 떠올리면 쉽다.
띄어쓰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말은 어떤가. ‘찬 바람’은 날씨가 차갑다는 뜻이고, ‘찬바람’은 냉랭하고 싸늘한 기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큰 소리’는 소리가 크다는 뜻이고, ‘큰소리’는 뱃심 좋게 과장해서 하는 말이다. 비슷한 예로 ‘배 속’은 엄마의 배 속, ‘뱃속’은 마음을 속되게 이를 때 쓴다. 불필요한 한자어를 덧붙이는 일도 피해야 한다. 식당이나 연회장에 “컵은 정수기 위에 위치해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여 놓은 걸 본 적 있다. 이럴 땐 그냥 “컵은 정수기 위에 있습니다”라고 하면 깔끔하다.
어휘 부족하면 생각 빈곤해져
잘못된 말과 글을 바로잡는 데서 나아가 맛깔스러운 우리말을 되살리고 널리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꼭 한글날이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아름다운 우리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말맛과 느낌, 소리까지 좋은 말이 널려 있다. 신랑 신부 첫날밤을 가리키는 ‘꽃잠’, 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나비잠’, 가늘고 긴 막대기나 줄이 탄력 있게 흔들리는 모양의 ‘낭창낭창’, 닿거나 스치는 느낌이 고운 ‘보드라운’, 열매나 꽃이 한데 잘게 모여 달린 ‘송아리’ 등 예쁜 말이 즐비하다.
바람과 구름에도 예쁜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샛바람(동풍), 하늬바람·갈바람(서풍), 마파람(남풍), 높바람·된바람(북풍), 높새바람(북동풍), 늦하늬바람(남서풍) 등이 있고 철 따라 봄바람, 소소리바람, 꽃샘바람, 피죽바람, 건들바람, 찬서리바람, 손돌바람 등이 있다. 구름 이름도 뭉게구름을 비롯해 꽃구름, 삿갓구름, 새털구름, 실구름, 안개구름, 양떼구름 등 수십 개에 이른다.
김수영 시인은 60년 전 수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꼽았다.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부싯돌, 벼룻돌. 장사하던 아버지와 상인들에게 배운 ‘삶터 말’이 대부분이다. 요즘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는 어떤 게 있을까. 저마다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인간은 언어로 생각한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어휘만큼 사고할 수 있다. 어휘가 부족하면 생각이 빈곤해진다. 창의력이 줄어들고 품격도 낮아진다. 언어는 곧 인격이다. 어떤 말을 쓰는지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 올바른 말글살이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세 문장 모두 잘못된 높임말을 포함하고 있다. 첫 번째 문장의 “제가 아시는 분”은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말이어서 “제가 아는 분”이라고 해야 옳다. ‘아시는 분’은 ‘나’가 아니라 ‘그분’을 주어로 할 때 “저를 아시는 분”이라는 형식으로 쓸 수 있다. 두 번째의 “저에게 여쭤보세요”도 자기 존대이므로 “저에게 물어보세요”라고 써야 한다. ‘물어보다’의 높임말인 ‘여쭤보다’를 자신에게 적용하면 우스워진다. 세 번째는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 하는지 선생님께 여쭤봐라”로 각각 높임말을 쓰는 게 맞다.
"디자인이 예쁘시죠?"는 틀린 말
왜 이렇게 높임말을 잘못 쓰는 사례가 많을까. 경어법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문장의 주체를 높이는 주체경어법과 대화 상대를 높이는 상대경어법을 거꾸로 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밖에 나가셨다”와 같이 ‘시’를 붙여 문장의 주체인 ‘선생님’을 존대하는 게 주체경어법이다. 반면 “학생이 밖에 나갔습니다”와 같이 ‘학생’ 말고 대화 상대를 ‘습니다’로 높이는 게 상대경어법이다. 객체경어법은 문장 주체의 행위가 미치는 대상을 높이는 것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 하는지 선생님께 여쭤봐라”가 그런 예다.
높임말의 ‘시’는 사람에게만 붙이는데, 무생물인 사물에 ‘시’를 갖다 붙이면 황당한 ‘사물 존칭’이 된다. 요즘도 커피숍이나 마트, 백화점에서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이 제품 디자인이 너무 예쁘시죠?” “이 화장품은 피부에 정말 좋으세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럴 땐 ‘시’를 빼고 “커피 나왔습니다” “디자인이 너무 예쁘죠?” “피부에 정말 좋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오래전부터 많은 지적이 있었지만 아직 고쳐지지 않고 있다. ‘시’를 빼면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손님이 있다니, 알고도 못 바꾸는 종업원들의 속사정 또한 안쓰럽다.
이중 존칭도 잘못된 사례다. 서류나 우편물을 보낼 때 받는 사람 이름 뒤에 ‘님’ 또는 ‘귀하’라고 쓰면 되는 것을 꼭 ‘님 귀하’라고 겹쳐 쓰는 이가 있다. 이는 중복 높임이자 과잉 표현이기에 하나만 써야 한다. 간혹 이름 뒤에 ‘님’이나 ‘귀하’ 대신 ‘귀중(貴中)’이라고 쓰는 사람도 있다. ‘귀중’은 개인이 아니라 단체나 기관에 붙이는 단어이므로 ‘~협회 귀중’ 식으로 구분해서 써야 한다.
단어의 뜻을 몰라서 낭패를 겪기도 한다. 특히 “칠칠하다/ 칠칠맞다”와 “칠칠치 못하다”를 잘못 쓰는 일이 잦다. ‘칠칠하다/ 칠칠맞다’는 ‘단정하고, 야무지고, 알차다’는 뜻이다. 사전적으로는 ‘나무, 풀, 머리털 따위가 잘 자라서 알차고 길다’ ‘깨끗하고 단정하다’ ‘반듯하고 야무지다’는 의미를 지닌다. 부정적으로 쓸 때만 ‘칠칠치 못하다’고 써야 하는데 ‘칠칠맞다’고 잘못 쓰곤 한다. 표기법을 몰라서 ‘예컨대’ ‘단언컨대’ ‘바라건대’의 뒷부분을 ‘~데’로 잘못 쓰는 경우도 많은데 이럴 땐 ‘대’로 써야 옳다.
어휘를 잘못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방향을 가리키는 것과 관련된 사례를 보자. “하염없이 강물을 쳐다보던 그가 이윽고 발밑을 쳐다보며 걷기 시작했다”는 문장에서 “쳐다보다”는 잘못 쓴 표현이다. ‘쳐다보다’는 자기 눈보다 위에 있는 것을 볼 때 쓰는 말이다. 산꼭대기나 달은 ‘쳐다보다’ ‘올려다보다’라고 해야 맞고, 강물이나 발밑은 ‘들여다보다’ 또는 ‘내려다보다’라고 해야 한다. 노래로도 잘 알려진 김광섭 시 ‘저녁에’의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란 구절을 떠올리면 쉽다.
띄어쓰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말은 어떤가. ‘찬 바람’은 날씨가 차갑다는 뜻이고, ‘찬바람’은 냉랭하고 싸늘한 기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큰 소리’는 소리가 크다는 뜻이고, ‘큰소리’는 뱃심 좋게 과장해서 하는 말이다. 비슷한 예로 ‘배 속’은 엄마의 배 속, ‘뱃속’은 마음을 속되게 이를 때 쓴다. 불필요한 한자어를 덧붙이는 일도 피해야 한다. 식당이나 연회장에 “컵은 정수기 위에 위치해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여 놓은 걸 본 적 있다. 이럴 땐 그냥 “컵은 정수기 위에 있습니다”라고 하면 깔끔하다.
어휘 부족하면 생각 빈곤해져
잘못된 말과 글을 바로잡는 데서 나아가 맛깔스러운 우리말을 되살리고 널리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꼭 한글날이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아름다운 우리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말맛과 느낌, 소리까지 좋은 말이 널려 있다. 신랑 신부 첫날밤을 가리키는 ‘꽃잠’, 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나비잠’, 가늘고 긴 막대기나 줄이 탄력 있게 흔들리는 모양의 ‘낭창낭창’, 닿거나 스치는 느낌이 고운 ‘보드라운’, 열매나 꽃이 한데 잘게 모여 달린 ‘송아리’ 등 예쁜 말이 즐비하다.
바람과 구름에도 예쁜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샛바람(동풍), 하늬바람·갈바람(서풍), 마파람(남풍), 높바람·된바람(북풍), 높새바람(북동풍), 늦하늬바람(남서풍) 등이 있고 철 따라 봄바람, 소소리바람, 꽃샘바람, 피죽바람, 건들바람, 찬서리바람, 손돌바람 등이 있다. 구름 이름도 뭉게구름을 비롯해 꽃구름, 삿갓구름, 새털구름, 실구름, 안개구름, 양떼구름 등 수십 개에 이른다.
김수영 시인은 60년 전 수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꼽았다.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부싯돌, 벼룻돌. 장사하던 아버지와 상인들에게 배운 ‘삶터 말’이 대부분이다. 요즘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는 어떤 게 있을까. 저마다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인간은 언어로 생각한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어휘만큼 사고할 수 있다. 어휘가 부족하면 생각이 빈곤해진다. 창의력이 줄어들고 품격도 낮아진다. 언어는 곧 인격이다. 어떤 말을 쓰는지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 올바른 말글살이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