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차기 금융위원장, 대책반장 맡아야
10여 년 전 기자가 금융권을 취재하던 때 금융위원장은 ‘대책반장’ 김석동이었다. 2011년 1월 취임한 김 위원장은 첫 과제로 ‘저축은행 사태 해결’을 떠안았다. 당시 저축은행에선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이 끊이지 않았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였다. 영업정지를 통보하기 불과 한 시간 전에야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알려줬다고 한다. 사실을 미리 공개하고 협의하는 순간 정치권의 온갖 압박에 일이 틀어질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그렇게 2년 동안 20개 넘는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다.

꺼지지 않는 위기의 불씨

선명한 기억이 또 하나 있다. 2012년 표심을 노린 국회는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급조해 들고나왔다. 문을 닫은 저축은행에 5000만원 이상 예금한 고객이 입은 피해액 중 55%까지 물어주자는 법안이었다. 예금자보호법(5000만원까지 보호)을 무력화하는 조치였다. 당시 김 위원장은 온몸으로 법안 통과를 막아냈다. 정치인의 표 욕심을 맞춰주기 위해 금융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사석에서 종종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위기가 닥칠 거라는 걸 안다면 더 이상 위기가 아니다.” 위기가 오기 전까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메시지다. 2013년 퇴임한 그를 다시 소환해낸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도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불안감에선 늘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은 이미 빚에 포위돼 있다. 가계 기업 정부의 빚을 합한 수치만 6000조원(작년 말 기준)을 넘어선 상태다. 코로나19 사태 때 빚을 낸 자영업자들은 수년간 고금리·고물가에 허덕이다 거리에 나앉기 직전이다.

빚으로 버텨온 기업들은 구조조정의 시대를 맞았다. 올해 초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이 서막이다. 앞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건설사와 금융회사가 쓰러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직접 총대 메고 뛰어야

석유화학 등 일부 업종에선 대기업들도 사업 조정에 들어갔다. 재계 서열 2위인 SK는 그룹 차원의 사업 재편을 추진 중이다. 현금성 자산 90조원을 손에 쥔 ‘천하의 삼성’도 산업은행에 대출 한도와 금리를 타진했을 정도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들의 몸부림은 점점 다급해지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다. 그런데 우리 경제팀엔 대책반장이 보이지 않는다. 수술대를 펼치고 집도(執刀)해본 이가 별로 없다. 현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와 금융위원장 등은 경제·금융 전문가지만 ‘험한’ 일과는 거리가 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책실장은 교수 출신이고, 경제수석은 예산 전문가다. 검사 출신인 금융감독원장이 경제 현안의 총대를 멘 모양새지만 ‘정책 호위무사’에 가깝다.

그렇다고 ‘칼잡이 이헌재(외환위기 시절 금융감독위원장)’나 ‘옛 대책반장 김석동’을 다시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침 소폭 개각을 했다. 구조조정 일을 해본 차기 금융위원장이 직접 총대를 메야 할 때다. 회의하고 사진 찍는 ‘장관 놀이’할 생각은 접어두시라. PF 연착륙 및 가계부채 축소, 기업 구조조정 등 복잡다단한 현안의 주도권을 쥐고 뛰어야 한다. 스스로 대책반장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