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지난 버스기사, 재고용·갱신 해야할까…대법 판결 엇갈렸다
A운수 '부당해고 구제' 취소소송 상고심
대법, 원심 일부 깨고 고법으로 돌려보내

C씨 재고용 "추상적 기준 심사요건 제시
재고용 보장된단 취지 아냐" 인정 안해

B씨 갱신 기대권 "과거 사고 냈던 사실
최초 계약시 인지…거절 근거 부당" 인정
정년 이후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의 재고용 갱신 기대권을 일부 인정하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재고용 관행으로 사측과 신뢰 관계가 형성됐을 때는 근로자가 정년 후 재계약에 대한 갱신 기대권을 가질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한 판례라는 평가다.

"합리적 이유 없는 재계약 거절 부당"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시내버스 회사인 A 운수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 일부를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 운수는 정년이 도래한 버스 기사를 대상으로 건강 상태·근로 태도·성적·업무 필요성 등을 평가해왔다. 이와 함께 '일정 기준에 부합되면 기간제로 재고용할 수 있다'는 취업규칙을 시행해 왔다. 단체협약에도 만 61세의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과반수 노조와 협의해 기간제로 재고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이 있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 운수는 2014년 1월부터 3년간 정년을 넘긴 23명 중 13명과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2017년 기준 기간제 버스 기사는 35명으로 이 중 21명은 재계약을 통해 정년 이후에도 수년간 근무했다. 여덟 차례 재계약을 맺은 기사도 있었다.

이번 소송을 낸 버스 기사 2명은 근로계약이 갱신되지 않은 이례적 사례였다. B씨는 2015년 12월 정년 이후 1년간 기간제로 일했지만, 근로계약이 갱신되지 않았다. C씨는 2016년 12월 정년이 됐지만 재고용되지 못했다.

이들은 재고용이 안 된 것은 사측의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라며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인천 지노위는 갱신 기대권을 인정하지 않은 채 청구를 기각했지만, 중노위는 이를 뒤집고 버스 기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중노위는 "기간제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기대권이 존재함에도 A 운수가 합리적 이유 없이 재계약을 거절한 것은 부당하다"며 "원직 복직과 부당해고 기간 근로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A 운수는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2017년 8월 소송을 냈다

대법, 갱신 기대권 인정

1심 재판부는 갱신·재고용 기대권을 모두 인정하지 않고 사측 손을 들어줬다. B씨의 경우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이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취업규칙에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당연 퇴직 사유로 명시하고 있고, 재계약 관행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C씨에 대해서도 단체협약 규정이 기간제 근로 계약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은 아니라고 봤다.

2심 판단은 달랐다. A 운수에서 한 번도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퇴사한 4명 중 3명은 사고나 개인적인 사유로 퇴직한 부분에서 갱신 기대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근로자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기간제 근로계약이 갱신될 것이라는 합리적인 기대를 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고용 기대권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재고용 기준의 충족 여부를 심사한 자료 등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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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B씨의 갱신 기대권은 인정했으나 C씨의 재고용 기대권은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C씨의 재고용 기대권에 대해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에는 회사에 재량을 부여하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고, 재고용 심사의 기준도 추상적으로만 제시돼 있어 일정한 기준을 충족할 경우 재고용이 보장된다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A 운수의 B씨에 대한 근로계약 갱신 거절이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다는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며 정년 이후의 기간제 근로계약의 갱신 기대권이나 기간제 근로계약 갱신 거절의 합리적 이유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B씨가 정년퇴직 전 4차례 사고를 일으킨 사실은 최초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 당시 A 운수가 충분히 고려할 수 있었던 사정이었다"면서 "최초 계약 체결 당시 A 운수가 이 같은 사정을 알지 못했다는 둥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B씨가 일으켰던 사고는 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정당한 근거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