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모르는 호텔 객실 화재…"투숙객에겐 책임 없다"
숙박시설에서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생한 경우 투숙객에게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발생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화재로 인해 객실에 발생한 손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숙박업자의 부담이라고 본 것이다.

보험사 "객실 빌려준 것 … 일종의 임대차 계약" 주장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민사2부(주심 대법관 권영준)는 보험회사 A사가 투숙객 B씨 등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사건번호:2023다244895)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한 원심을 지난 11월 2일 확정했다.

A사는 모텔 숙박업자에게 화재로 인한 보험금을 지급한 뒤 B씨 등에게 손해배상 명목으로 약 5800만 원의 구상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21년 4월 해당 모텔에서 투숙하던 B씨는 투숙하던 중 객실 내부에서 화재로 인해 모텔 객실 등에 심각한 손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B씨의 책임 보험사인 C사에도 연대해 손해를 배상하라고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경찰은 현장 조사 결과, 객실 내부에서 B씨가 버린 담배꽁초 등이 발견됐으나 발화 원인으로 지목하기는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A사는 "모텔 객실을 임차한 임차인으로서 원인 불명 화재가 발생한 경우, 그 책임을 면하기 위해선 객실의 보존에 관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사는 2020년 4월 인천 소재 모텔을 운영하는 숙박업자와 모텔 건물과 시설, 집기 등에 대한 화재 보장 관련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1, 2심·대법원 모두 보험사 청구 기각

1, 2심은 A사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존 임대차계약상 증명책임 법리와는 다른 별개의 논리에 따라 증명책임을 분배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1, 2심 재판부는 "임차인이 그 책임을 면하기 위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를 다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숙박업자로서는 투숙객에게 위험이 없는 안전 배려 등 보호 의무 불이행에 관해 자기에게 과실이 없음을 주장·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A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다만 대법원은 기존 임대차계약상 증명책임에 관한 법리를 따르되, 숙박시설 객실은 숙박업자의 지배·관리에 있다는 점을 근거로 임대차계약과는 증명책임을 달리 분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연합뉴스
재판부는 "숙박업자는 고객에게 객실을 제공한 이후에도 필요한 경우 객실에 출입해 고객의 안전 배려 또는 객실 관리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며 "숙박업자가 고객에게 객실을 제공해 일시적으로 이를 사용·수익하게 하더라도 객실을 비롯한 숙박시설에 대한 점유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객실을 비롯한 숙박시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숙박 기간 중에도 고객이 아닌 숙박업자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며 "임차인이 임대차 기간에 목적물을 직접 지배함을 전제로 한 임대차 목적물 반환 의무 이행불능에 관한 법리는 이와 전제를 달리하는 숙박 계약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고객이 숙박 계약에 따라 객실을 사용·수익하던 중 발생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화재로 인해 객실에 발생한 손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숙박업자의 부담으로 귀속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