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줄 상속 재산보다 빚이 더 많을 때…퇴직연금은 압류될까?
직장인 가장이었던 A씨가 사망했다. 그는 가족들에게 남겨줄 재산보다 빚이 더 많았다. 유가족들은 상속재산에 대해 파산 신청을 했다. A씨 명의 재산에 대해 압류가 들어가고 채무자들에게 나눠주는 이른바 '빚잔치'가 진행된다. 그런데 A씨 앞으로 가입된 직장인 퇴직연금이 있었다. 이 퇴직연금을 파산자의 재산(파산재단)으로 보고, 압류해야 할까?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달 4일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퇴직연금 채권은 상속재산 파산절차에서 파산재단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확정했다. "원칙적으로 퇴직연금 채권이 상속재산 파산절차의 파산재단에 포함된다"고 본 원심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그동안 파산 시 퇴직연금을 압류재산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법령 해석이 쟁점이 되어 왔다. 이번 대법원 판례를 통해 통일된 법령해석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이번 사건은 채무자이자 망인이 된 A씨의 상속재산 파산관재인(원고,피상고인)이 A씨가 가입한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을 운용·관리하는 신한은행(피고,상고인)을 상대로 "퇴직연금 채권이 파산재단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며 지급을 요구한 것에서 시작했다.

쟁점은 크게 2가지다. 상속재산 파산절차에서의 파산재단의 범위와 압류금지 재산을 어디까지 볼 것인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파산재단의 범위는 어디까지

원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에 근거해 퇴직연금을 파산재단에 포함된다고 봤다. 채무자회생법 제389조 제1항은 '상속재산에 대하여 파산선고가 있는 때에는 이에 속하는 모든 재산을 파산재단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채무자가 개인인 경우와 달리, 파산재단의 범위에 관한 별도의 독립된 규정을 두고 있다.

원심은 "원칙적으로 퇴직연금 채권이 상속재산 파산절차의 파산재단에 포함된다"고 봤다. 그러면서 "예외적으로 망인이 부양해야 할 가족의 최소한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한 재산인 경우에는 파산재단에서 제외될 수 있으나 원고가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한 재산이라는 점에 관한 증명을 다 하지 못했기에 파산재단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상속재산에 대해 파산을 신청하면, 압류 등 '상속재산 파산절차'가 진행된다. 상속재산 파산절차는 상속재산 자체에 파산능력을 인정해 채무 초과 상태의 상속재산을 엄격하고 공평하게 청산하기 위한 것이다.

퇴직연금은 압류 금지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의 내용을 들어 퇴직연금 채권은 파산재단에 속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 법 제7조는 '퇴직연금제도의 급여를 받을 권리는 양도 또는 압류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해 퇴직연금 수급권 전액에 관하여 압류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퇴직연금이 근로자 본인은 물론 그 가족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기초가 되도록 하려는 사회적, 정책적 고려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퇴직연금 채권은 퇴직급여법에서 근로자 본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생계유지 등을 두텁게 보호하려는 사회적, 정책적 목적 등에 따라 전액에 대해 압류를 금지한 것"이라며 "다른 압류금지재산보다 압류금지 범위가 확대된 재산"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파산재단에서 제외하는 것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결과를 발생시킨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상속재산 파산절차에서 파산재단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