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월급 통장 이자는 왜 낮을까
규제를 만드는 주체는 다양하다. 규제라고 하면 관료와 정치인이 먼저 떠오르지만 민간이 민간을 규제하는 경우도 있다. 은행들의 반대로 증권사 계좌를 월급 통장으로 이용하기 힘든 게 대표적이다. 은행이 밥그릇을 뺏기지 않기 위해 다른 민간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막은 것인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금융 소비자 몫이다.

직장인이라면 월급 통장의 낮은 이자율에 불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월급 통장으로 쓰이는 은행 수시입출금식예금의 금리는 연 0.1% 정도다. 100만원을 1년 내내 예치해도 이자는 1000원에 불과하다.

법보다 강한 규약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의 금리는 연 3.5% 안팎이다. CMA를 월급 통장으로 쓴다면 계좌에 돈을 방치해도 1년 만기 정기예금 수준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 CMA를 월급 통장으로 쓰기는 어렵다. 기업들이 증권사 계좌를 통해 일괄적으로 직원들에게 자금이체(법인 지급결제)를 할 수 없어서다. 증권사는 기업의 '주거래 금융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직원이 회사 측에 CMA로 월급을 보내달라고 먼저 요청하지 않는 한 월급 통장으로 쓰이지 않는다.

CMA를 월급 통장으로 사용할 수 없게끔 하는 법이나 시행령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반대다. 국회는 2007년 자본시장법을 제정하며 증권사가 개인과 법인 고객 모두에게 지급결제 업무를 할 수 있게 해줬다. 이 법이 2009년 6월부터 시행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14년간 법이 허용한 업무가 막혀 있다는 얘기다.

법인 지급결제가 불가능한 것은 금융결제원의 규약 때문이다. 금융결제원의 전자상거래 지급결제 중계업무 규약 제3장 7조에는 ‘금융투자회사는 법인이 지급결제 중계업무를 이용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규약 한 줄이 법보다 막강한 규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증권사들은 이 규약을 개정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결제망 사용료로 4000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까지 금융결제원에 이미 납부했다.

경쟁 두려워하는 은행

규약을 고치려면 금융결제원 이사회를 열어야 한다. 이사회는 비상임이사 11명과 금융결제원장, 전무이사 등 13인으로 구성된다. 비상임이사 11명은 모두 은행이 선임한다. 증권사는 이사회에 출석해 발언할 수 있지만 의결권은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은행이 반대하면 규약을 고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증권사에 해당 업무를 허용하면 결제 불이행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증권사는 개인을 대상으로 이미 지급결제 업무를 하고 있는데, 결제 불이행이 발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대형 증권사보다 덩치가 작은 저축은행들도 법인 지급결제를 하고 있다.

금융결제원은 규약을 고치지 않는 이유에 대해 2007년 자본시장법 제정 당시 일부 국회의원 등이 증권사의 안전성에 대해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법과 상충하는 규약을 유지하기 위해 16년 전 지적을 들고나온 것이다.

인공지능(AI)이 자산 배분까지 해줄 정도로 고난도 금융서비스가 일반화된 시대다. 단순 이체 업무인 지급결제를 특정 업권만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에서 보듯 은행이 무조건 안전하다는 인식 역시 통하지 않는다. 은행들이 차라리 ‘기업 고객을 뺏길 수 있어 반대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